김태경 전국부 부장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기록학계와 기록전문가 단체들은 정부 입법예고 기간부터 입법안에 대해 '소통 부재,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최소한의 전문성과 여론수렴 단계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더욱이 최근 대통령 계엄과 관련한 국무회의 기록물 은폐 시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국가기록물의 보전과 공개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된다.
이번 개정안은 기록물의 '안전한 보존'을 '안전하고 효율적인 보존'으로 개정하려 하면서 보존 업무의 축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보존의 '효율적 활용'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보존을 소홀히 함으로써 공공기록 관리체계가 후퇴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크다. 적용 범위도 공공기관 위주의 기록물로 한정하고 있어 한계가 뻔하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민간기록물에 한정하고 있을 뿐이며, 국외기록물 범위도 불명확하다. 그런데도 법명을 국가기록물법으로 개정하려 한다. '국가'라는 단어를 포함하면 법률과 기관의 격이 상승한다고 보는 것일까. 관료제적 혹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니라면 국가기록의 중요성과 가치를 고려할 때 실질적인 목적과 적용 범위의 확대 없는 법명 개정은 오히려 행정상 엄청난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는 시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만 최근 국가기록원이 계엄사태와 관련한 기록물 폐기를 금지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가기록원은 진상규명을 위해 해당 기록물의 폐기를 금지하고 이를 대통령비서실, 국방부 등 20개 기관에 통보했다. 그렇지만 그사이 폐기되거나 축소되거나 은폐한 시도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한 자료 복원과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지난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기록이 보존기간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동안 기록원 측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은 기록폐기 금지조치를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조사기관 또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으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이 기록폐기 금지조치 권한을 독점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기록폐기 금지권한을 국회, 장관급 기관, 광역자치단체 영구기록물관리기관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공기록물법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을 구현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06년 개정됐다. 투명행정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기록을 누락 없이 생산하고 안전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이 주된 책무다. 이런 막중한 책무를 도외시한 채 상급기관인 행안부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의 향배에 따라 기록물의 보존과 공개가 결정된다면 누가 기록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인정해줄 것인가.
이참에 국가기록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행안부 소속기관이지만 국가기록관리의 정책과 집행을 담당하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기록물관리종합계획 수립권한'을 행안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기록원의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국가기록원의 전문성과 위상을 격하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기록물관리에 관한 지도·감독 및 평가'라는 국가기록원의 업무마저 축소해 국가기록관리 전문기관인 국가기록원을 단순 행정기관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록물을 행정기관에서 생긴 부산물 정도로 취급하는 지금의 기록물 관리시스템으로는 기록물 공개·보존과 관련한 독립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주요 기록 생산 의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법 개정의 추진이 공감대를 얻는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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