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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악마는 '거짓말 패딩'을 입는다?

[기자수첩] 악마는 '거짓말 패딩'을 입는다?
이정화 생활경제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안드레아는 세계적 패션잡지의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스트리의 비서로, 그녀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한다. 미란다가 자신의 쌍둥이 딸을 위한 선물로 '해리포터' 미출간본을 구해 오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도 결국 해내고 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그녀 앞에 더 이상 우정도, 남자친구도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점차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자신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잃어버린다. 안드레아는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국 자신을 놓치고 만다. 미란다의 뒤를 좇던 그녀는 남자친구 알렉스로부터 "너는 나보다 미란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라는 이별의 말을 듣는다.

최근 연이어 터진 패딩 충전재 논란은 특정 업체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패션 브랜드 후아유의 구스다운 점퍼에 이어 무신사에 입점한 라퍼지스토어는 덕다운 패딩의 혼용률을 허위 기재한 사실로 곧 퇴점한다. 역시 무신사에 입점한 인템포무드와 페플도 충전재 혼용률 문제로 환불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논란은 소비자에게는 실망을, 브랜드와 플랫폼에는 치명타를 안긴다.

패딩 제품의 충전재 혼용률은 단순 정보가 아니다. 소비자가 품질과 보온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구스다운과 덕다운의 혼용 비율은 가격뿐 아니라 착용감, 보온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믿고 구매하는 정보가 사실과 다르면 순식간에 깨진 신뢰는 제품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잇달아 터진 패딩 충전재 혼용률 논란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원가절감이라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데, 이를 걸러낼 시스템마저 부재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브랜드가 원가절감을 위해 정보를 왜곡했다. 그리고 플랫폼의 검증시스템이 이를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패딩 충전재 혼용률 논란은 패션업계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린 심각한 문제다. 사태 이후 무신사 등 플랫폼들은 혼용률 상시점검에 나서거나 상품정보 표기와 관련한 약관을 강화하는 등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소비자 신뢰를 뒤늦은 대처로 어디까지 회복할 수 있을는지 미지수다.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인정받기 위해 편집장 미란다에게 공들이던 안드레아는 결국 회사를 떠난다. 미란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패션업계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패션업계는 이번 사태를 통해 소비자 신뢰가 갖는 무게감을 알아야 한다.

cle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