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초유의 법원 난동 사태
지역민·상인들, 불편 넘어 공포
헌재·서울구치소·중앙지법 등
대규모 집회 연일 예고돼 있어
"우리 동네 오면 어쩌나" 난색
전문가 "집회할 권리는 있지만 피해 주지 말아야 하는 게 전제"
지난 18일 내란 등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인근 도로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집회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 피해를 줘도 되나요?"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주민 박모씨(51)는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처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할 것으로 알려진 시점이었다. 서부지법 인근에 모여 있던 시위대들은 오후 2시께부터 법원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인도를 점령하고 집회를 이어갔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와 마이크 볼륨으로 인해 귀가 먹먹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틀 뒤 새벽 일부 시위대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응징하겠다며 서부지법을 습격하는 초유의 집단 난동까지 벌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수사와 탄핵심판 절차에 따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종로구 광화문, 용산구 한남동, 종로구 북촌, 마포구 공덕동 등으로 시위대가 이동하면서 주민과 상인의 고충도 확산되고 있다.
소음, 조명, 통행 제한, 교통 체증에 지난 19일에는 폭력 시위까지 확인됐다. 이로 인해 시위대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이제 '두려움'을 먼저 호소한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역 주민·상인의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를 침해할 정도로 과격해지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부지법 폭력 난동 이틀 전 공덕동 주변에서 우선 목격된 것은 주민들의 통행 불편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법원 청사에서 100m 이내 장소에선 1인 시위 이외의 집회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경찰의 경고 방송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아랑곳 않은 채 법원 인근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등의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조치를 꺼내 들었다. 이 덕분에 한 줄로 지날 수 있는 공간을 겨우 확보했다. 하지만 더 가까운 곳에서 집회를 열겠다는 시위대와 경찰이 실랑이를 벌이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인근 직장인 강모씨(31)는 "지나가도 되는지 몰라서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빨리 가봐야 한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통 통제도 시민 불편을 키웠다. 윤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8일 서울시 교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오후 2시9분께부터 마포대로 공덕오거리~아현초등학교 구간은 양방향 모두 전면 통제됐다. 마포우체국~공덕오거리 구간은 시속 10.8㎞/h로 정체됐다. 같은 시간 서울시 전체 속도는 시속 20.1㎞/h, 도심 전체 속도는 15.6㎞/h 수준이었다. 오후 4시8분께부터 9분간 서울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상하선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영업 피해를 호소했다. 법원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와서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인도 통행이 막히면서 방문객 수는 평소보다 많지 않았고, 집회 참가자로 보이는 팀은 딱 두 팀 왔다"며 "소음도 크고, 가게 주변에 담배에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 종일 고생했다"고 했다.
앞으로도 대규모 시위대가 집회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시민 걱정은 커지고 있다. 서부지법 사태의 재현 가능성도 없는 것이 아니다. 폭력 난동 같은 날 오후 헌법재판소 담장을 넘으려던 3명이 다시 적발됐다.
오는 21일과 23일 오후에도 헌재 앞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다. 윤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는 연일 집회가 열린다. 윤 대통령 측이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할 경우 서초역과 교대역 인근 주민·상인에게도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내용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제한 없는 권리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권리를 행사할 때의 기본 전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주민 고통을 외면하거나 공공질서에 해를 끼치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서 선진적인 집회 문화가 더 확산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한국의 집회 문화가 선진적이지만, 돌출적인 현상이 없지는 않다"면서 "폭력적이거나 시민에게 큰 피해를 주는 형식의 집회는 공감을 살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자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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