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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칼럼] 극심한 분열과 정치의 책임

80년 전 극도의 좌우 대립
뿌리 깊은 갈등이 재현돼
선동 아닌 화합 정치 갈망

[손성진 칼럼] 극심한 분열과 정치의 책임
논설실장
나라가 쪼개진 듯 좌우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 도달했다. 본 적 없는 법원 난입 사태도 벌어졌다. 광복 후 서로 잡아먹을 듯 싸웠던 분열상의 재현이다. 80년이 지났어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100년 전인 1925년 4월 17일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트로이카가 조선공산당을 창건했지만 기를 펴지 못했다. 일제라는 타력(他力)에 의해 공산당의 싹이 자라지 못한 것이다.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떤 길을 걸었을지 알 수 없다. 러시아혁명 같은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 조선 왕조를 멸망시켰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좌익은 본색을 드러냈다. 박헌영의 남로당이 발호하고 노동자들의 시위가 폭발하면서 미군정, 우파와 전쟁과도 같은 대결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대구폭동 사건이다. 그때 38선 이북에서는 이미 북한 정권이 완성돼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계급을 숙청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을 뿌리치고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 북한은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적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작금의 좌우 대립의 뿌리는 이렇게 깊다. 차등과 평등, 성장과 분배라는 단순한 이념적 가치 때문은 아닌 것이다. 충돌과 전쟁을 거치며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나쁜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고 여태 선명하다. 극렬한 우파는 자신의 대(代)에서, 또는 부모들로부터 좌파나 공산주의의 실상을 실제로 경험했거나 익히 전해 들은 사람들일 것이다. 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는 고령의 어떤 이는 6·25전쟁 전 북한 지역 출신으로서 지주를 처단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윤석열 구속'을 외친 반대쪽 열혈 시위대 또한 절절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1986년 대한조선공사에서 용접사로 일했던 김진숙씨가 그 예다.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는 배경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은 격분을 일으킨다. 격분은 과도한 정치적 관심에서 나아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정 아닌 열정을, 종국에는 숨은 폭력성까지 끌어냈다. 우파나 좌파나 부인할 수 없는 똑같은 현실이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잊혀가는 기억을 의도적으로 되살려 지지자 결집을 노린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목적은 집권이다. 이념 갈등을 해소하여 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도로 분열을 선동한다. 친일 문제도 그렇다.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갈라 편을 나눈다. 야당, 좌파가 더 심하다. 친일=우파라는 등식은 꼭 성립하지도 않는데도 억지로 끌어 맞춘다.

윤 대통령 구속이 당연하다손 쳐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불행이자 전체 정치권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이 현 사태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자숙해야 마땅하다. 야당의 주장대로 윤 대통령이 '괴물'이라면 잠자는 그 괴물을 자극하여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야당 자신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직 대통령 구속을 놓고 야당과 그 지지자들이 꽹과리를 치고 잔치를 벌이듯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책임 인식은커녕 벌써 집권한 듯이 아주 신이 나 있다. 그러면서 공세를 더 강화하고 분열을 더 부추긴다. 야당이 공격할수록 여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현상은 기이하지도 않다. 그 반작용일 뿐이다. 이른바 역풍이다. 잘못을 빌 듯하다가도 윤 대통령 측은 역풍에 편승해 공격을 맞받아치며 열혈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뚫고 나가지 못하고 비극적 역사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돈다.

대중은 현명하지만 때론 무지(無知)할 수 있다. 선전 선동에도 약하다.
정치는 그냥 협잡일 뿐이다. 그래서 기대는 크지 않다.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도록 대중을 이끌어야 하겠지만, 단지 나쁜 쪽의 선동만큼은 중단하기 바랄 뿐이다.

tonio66@fnnews.com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