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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새벽배송 시키면 편하신가요?

[테헤란로] 새벽배송 시키면 편하신가요?
박지영 경제부 차장
워킹맘이라 정신없는 하루를 지내다 보면 아이의 준비물을 급하게 준비할 때가 많다. 며칠 전 아이의 첫 발레수업 전날 잠들기 직전에야 발레슈즈를 깜빡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상 그랬듯이 쿠팡 로켓배송을 이용하면 됐기에 별걱정 없이 바로 주문했다. 1분도 안 걸렸다. 그러나 다음 날 늦은 오후 배송이 하루 늦어진다며 1000원을 보상해준다는 알람이 떴다. 결국 아이는 발레슈즈 대신 양말을 신고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화가 났다. 익일배송을 100% 믿을 건 아니니 평소에 잘 챙겼어야 하는 내 불찰도 있었지만 말이다.

익일배송·새벽배송 서비스가 시작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 삶 속에서는 '불가능하면 화가 나는' 너무도 당연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삶이 편안해졌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24시간 배송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력이 끊임없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야간노동 근로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간노동은 위험하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우리의 안락한 삶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건강이 꾸준히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고용노동부는 쿠팡CLS의 야간노동 및 과로사·일용노동자의 개인사업자 위장·불법파견 등 각종 논란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감독은 정부의 24시간 배송업계에 대한 첫 근로감독이다. 고용부는 근로자 및 배송기사의 건강권 보호와 작업환경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강제력은 없다는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다. 쿠팡이 어떤 대책을 세우는지가 향후 업계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쿠팡으로 시작된 익일배송·새벽배송 서비스는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부터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을 선포한 만큼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야간노동 근로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야간노동 근로자에 대해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더욱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보호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용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실제로 쿠팡 근로감독 결과 공개 후 고용부 관계자에게 야간근로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질의하자 "아직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라도 야간근로 종사자의 노동환경과 건강권 보호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 더 안전한 야간근로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때다.

aber@fnnews.com 박지영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