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심하게 체했을 때 엄지손가락 안쪽 손톱뿌리에 위치한 소상혈(少商穴)을 일회용 사혈침으로 찔러 피를 내면 효과가 있다. 이것을 보통 ‘손따기’라고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떡을 좋아하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사내는 떡을 좋아해서 항상 설과 같은 명절만 기다렸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과 같은 명절이 아니고서는 떡을 먹을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집에서는 그해 설에도 가래떡을 만들었다. 사내도 집에서 가래떡 만드는 과정을 열심히 도왔다. 먼저 멥쌀을 물에 불려서 물기를 뺀 후에 맷돌에 곱게 갈라서 쌀가루를 만들었다. 곱게 빻은 쌀가루는 시루에 담아 쪘다. 시루에 찐 떡을 떡메치기로 반복적으로 쳐내서 찰지게 만든 다음 이것을 다시 길게 늘여서 가래떡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가래떡들은 말려 두었다가 떡국을 끓이거나 겨울철 좋은 간식으로 활용되었다.
아침부터 만들기 시작한 가래떡은 저녁이 돼서야 완성이 되었다. 사내는 가래떡을 많이 먹으려고 아침부터 일부러 굶기까지 했기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다. 사내는 뜨거운 가래떡이 완성되자마자 한줄을 집어 들고 먹었다. 1년 만에 먹는 가래떡 맛은 기가 막혔다. 길이가 거의 1척(尺)이나 되는 가래떡을 물도 없이 순식간에 몇 개를 집어삼켰다.
그런데 갑자기 명치끝이 달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위장이 꽉 찬 듯 답답하고 아파졌다. 트림을 시원하게 하고 싶었지만 트림도 잘 나지 않으면서 구역감이 생겼다. 한번 토한 후에도 배는 불러오고 가스가 차고 더부룩했다. 눈을 감으면 어질거리는 느낌이 있었고 이마와 양쪽골에 두통도 생겼다. 마치 감기에 걸린 듯 몸은 으슬으슬하면서 손끝이 차가워졌다.
사내는 “어머니, 배가 뭉치고 계속 아프면서 불편합니다.”라고 울 듯이 말했다. 사내의 어머니는 “이거 동치미 국물인데, 마셔보도록 하거라. 원래 옛날부터 떡을 먹고 체하면 동치미 국물이 최고였다.”라고 했다.
실제로 생무에는 곡물의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효소가 풍부했다. 그래서 밥이나 떡을 먹고 체했을 때는 생무를 먹는 것이 응급처치였다. 동치미나 깍두기 또한 생무와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사내는 어머니가 건네준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쭈욱하고 들이켰다. 식도부터 위장까지 시원한 느낌이 있었고 먹자마자 트림이 꺼억하고 났다. 좀 시원해지는 듯했지만 다시 명치가 답답하고 어지럽고 두통이 있는 것은 여전했다.
이때 사내의 아버지가 사내에게 등을 약간 앞으로 숙이게 하고서는 “체했을 때 등을 두드리면 내려갈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내의 등을 두드렸다.
등의 척추 옆에는 많은 혈자리가 있는데, 명치부위 뒤편에는 비수혈(脾兪穴)과 위수혈(胃兪穴)이 있다. 비수혈은 11번 흉추 바로 옆으로 손가락 한마디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고, 위수혈은 12번 흉추 바로 옆에 있다. 옛날부터 체하면 등을 두드리는 민간요법이 있었는데, 실제로 아무 곳이나 두드리기보다는 바로 비수혈과 위수혈 부위를 두드리면 효과적이다.
사내의 아버지가 주먹을 쥐고 사내의 등을 툭툭 툭하고 두드리자 사내는 다시 한번 트림을 꺽 꺼억하면서 “이제 속이 좀 풀립니다.”라고 했다.
밤이 되었다. 그런데 사내는 배가 다시 뭉치듯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명치가 달리는 느낌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동치미 국물을 마셔봐도 효과가 없었고, 등을 때려 봐도 내려가지 않았다. 사내는 뒤척이며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누웠다가 앉기를 반복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내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동네 약방을 찾았다. 사내의 아버지는 “의원양반, 이놈이 어제 저녁에 가래떡을 먹고 체해서 동치미 국물도 먹여보고 등도 두들겨 봤지만 아침까지 이 모양이요. 어떻게 좀 해 주시오.”라고 사정을 했다.
의원이 진찰해 보더니 “이 아들만 이런 것이요? 다른 가족은 문제가 없는 것이요? 설사는 없었소?”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다른 가족도 가래떡을 모두 먹었지만 유독 아들놈 배가 아프오.”라고 했다.
의원이 보기에 설사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모두 함께 먹었지만 혼자만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면 체기가 분명했다.
만약 동일한 음식을 먹은 모든 사람이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것은 곽란(癨亂), 즉 식중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나타난다면 이것은 개인의 기능성 위장장애로 인한 소화불량이거나 알레르기 반응일 수 있으니 구별해야 한다.
의원은 삼릉침을 꺼냈다. 그러자 사내가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 의원님, 뭘 하시려고 이렇게 굵은 침을 꺼내신단 말입니까. 그냥 약을 좀 주시면 안되겠소?”하고 두려움이 떨며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체기에는 소체환 같은 약도 좋지만, 이렇게 급성으로 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소상혈에 출혈을 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네. 조금만 참으면 바로 끝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라고 안심을 시켰다.
소상혈(少商穴)은 엄지손가락 손톱 뿌리부위 안쪽 각진 곳에서 세로와 가로 선을 연결했을 때 만나는 부분에 해당하는 혈자리다.
의원이 사내의 양쪽 손가락 소상혈을 찔러 사혈(瀉血)을 시키자 사내는 명치를 막고 있는 큰 바윗덩이가 치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은 밝아지고 계속되었던 구역감이 사라졌다. 숨도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며 손끝에 온기가 돌았고 두통도 사라졌다. 눈을 감아도 느글거리거나 어지러운 증상도 없었다.
집에서 소상혈을 사혈하고자 할 때는 알코올 솜으로 소상혈 부위를 소독한 후 일회용 사혈침을 이용해서 피를 한 방울 정도만 내면 된다. 가벼운 경우는 한쪽만 사혈을 해도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증상이 심하면 양쪽 엄지손가락 모두 사혈하고,엄지발가락 안쪽에 있는 은백혈 또한 동일한 방법으로 사혈을 시키면 더욱 효과적이다.
옛날 어머니들이 하던 방식으로 굳이 손가락에 고무줄을 묶고서 사혈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피는 많이 낼 필요가 없이 단지 메주콩 양만큼 한 방울 정도 나면 다시 소독솜으로 눌러 소독하고 눌러서 지혈한 후에 일회용 밴드를 붙여 주면 끝난다.
항간에 손따기는 플라시보 효과라든지 다른 곳에 통증을 느끼게 함으로써 원래 불편했던 통증을 잊게 한다는 등등의 말들이 있지만 손따기는 실제로 임상에서 효과적인 치료법이며, 그 근거도 충분하다.
손따기는 그냥 옛날 어머니들만의 민간요법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 제목의 ○○○은 ‘손따기’입니다.
오늘이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태평성혜방> 少商二穴者, 木也, 在手大指端內側, 去爪甲角如韮葉, 白肉際, 宛宛中是也, 手太陰脈之所出爲井也, 針入一分, 主不能食, 腹中氣滿, 喫食無味, 留三呼, 瀉五吸, 宜針不宜灸, 以三棱針刺之, 令血出勝氣, 針所以勝氣者, 此脈脹腮之候, 腮中有氣, 人不能食, 故刺出血, 以宣諸臟腠也, 愼冷熱食. (소상 두혈은 오행으로 목에 해당한다. 엄지손가락 끝부분 안쪽에 있는데, 손톱 조갑각에서 부추잎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고 적백육제 사이로 가볍게 움푹 팬 듯한 곳이다. 수태음맥이 시작되는 혈자리로 정혈이다. 침은 1푼을 놓는다. 능히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배가 가스가 많이 차거나 밥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에 숨을 3번 쉴 동안 유침시키고 다섯 번 내 뱉을 때 발침해서 사한다. 침은 마땅하지만 뜸은 뜨지 못한다. 삼릉침을 이용해서 찌르면 피가 나게 해서 기를 이겨낸다. 침이 기를 이겨내는 자는 맥이 부풀어 올라 뺨이 붓고 기차 차오르면서 식사를 하지 못할 때도 찔러서 출혈을 시키는 이유가 되니 이로써 모두 장부의 주리를 펼치는 것이다.
너무 차거나 뜨거운 음식은 삼가야 한다.)
<향약집성방> 少商以三稜鍼剌之, 微出血, 洩諸臟熱湊, 不宜灸. (소상혈은 삼릉침으로 자침하여 약간 출혈시키면 모든 장부의 열이 빠져나가게 되어 촉촉해진다. 뜸은 마땅하지 않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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