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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포퓰리즘이 공항의 비극 부른다

새떼와 콘크리트 둔덕이
무안참사 원인 전부 아냐
인기영합 정치가 주요인

[구본영 칼럼] 포퓰리즘이 공항의 비극 부른다
구본영 논설고문
이번 설(29일)이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한달째다. 179명의 무고한 생명이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남긴 채 희생됐다. 가장의 팔순을 앞두고 3대 일가족 9명이 효도여행을 다녀오다 변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연초 홀로 남은 그 집의 반려견이 동물단체에 구조되는 방송 뉴스를 본 국민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졌을 법하다.

상흔이 해가 바뀌었다고 어찌 쉽게 아물겠나. 그날의 비극은 유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의 뇌리에도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이 감소하고 있다는 뉴스가 그 작은 징표다. 그렇잖아도 12·3 비상계엄 사태로 해외 관광객이 줄어들어 가뜩이나 곳곳에 적자공항들을 끼고 있던 지역경제의 주름만 더 깊어졌다.

참사의 원인으론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과 무안공항의 취약성이 함께 지목된다.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정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도한 운항을 했다는 지적이 전자다. 후자의 사례론 새떼충돌 위험을 차단하는 공항 시스템의 부실 등이 거론된다. 착륙유도장치인 로컬라이저를 잘못 설치한 건 결정타였다. 비상착륙한 비행기가 치고 나갈 수 없도록 콘크리트 둔덕에 세워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사고가 LCC와 지방공항들의 과잉 경쟁이 쌓인 결과란 뜻이다. 난립하는 항공사들은 적정 정비주기를 지키지 못하고, 이용객이 태부족한 공항은 적자 누적으로 안전 인프라가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면서다. 포항·경주공항 등 지방공항 여러 곳이 무안과 유사한 사고요인을 안고 있다. 특히 여수공항은 잦은 조류 충돌이라는 공통분모도 모자라 콘크리트 둔덕이 무안보다 훨씬 높다니 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공항과 항공사가 너무 많은 편이다. 반면 면적이 98배인 미국에 비해 고속도로·고속전철 등 대체 교통수단은 잘 갖춰져 있다. 그러니 지방공항들이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 김포, 제주, 김해를 뺀 나머지 11곳이 엄청난 적자 상태다. 명색이 국제공항인 무안공항도 이용객이 적어 '고추 말리는 공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다가 활주로 확장공사 중인 어수선한 상황에서 12·3 계엄 이후 졸속으로 국제선 재취항을 허가해 대참사를 빚었다.

결국 애초 사업성이 없는 지방공항을 무더기로 지은 게 화근이었다. 이는 여야 정치권이 각종 선거에서 유권자의 인기에 영합한 결과다. 포퓰리즘이야말로 이번 사고뿐 아니라 추후 또 다른 비극을 부를 수 있는 재앙의 씨앗이란 얘기다. 무안공항 말고도 이미 파리를 날리고 있는 양양국제공항, 그리고 착공 예정인 가덕도신공항, 대구경북신공항 등에도 포퓰리즘의 그늘이 드리워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처럼 각종 선심 공약이 유권자에게 달콤할 수도 있겠다. 신공항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공약은 지역 주민들에게 퍽 솔깃하게 들릴 게다. 그래서 여야는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밀어붙이기 일쑤다. 하지만 접근성이 나빠 지역민들이 시간 절약 등 실익 없이 리스크만 떠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용에 편리한 광주와 목포 공항을 두고 외진 곳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무안공항에서 국내 항공기 사고 중 가장 큰 참사가 발생한 건 극단적 사례이지만….

그런데도 비극이 재연될 소지를 막으려는 범국가적 움직임이 없다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참사 직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현장을 찾았다. 당시 유가족들에게 "TV에 광고(얼굴) 내러 왔어요?"라는 힐난을 들었던 여야 지도부다. 그러고도 여야 어디에서도 근본적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정부 예산(460억원)으로 추모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생색을 내고 있는 게 전부다. 혈세인 예산을 눈먼 돈인 양 예타 없이 뿌리는 건 모럴 해저드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가 정치권이 포퓰리즘의 덫에서 헤어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