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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좀비기업' 퇴출 발표, 증시 밸류업 원동력 되길

부실 상장사 퇴출 쉽도록 제도 개선
공매도 재개 포함 일관된 정책 필요

[fn사설] '좀비기업' 퇴출 발표, 증시 밸류업 원동력 되길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RX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와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을 21일 발표했다.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해 '좀비기업'을 더 빨리 퇴출시키고 기관투자자들의 단기매도를 제한해 IPO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해 국내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일환으로 지난해 초 내놓은 기업가치 제고 자율공시 등을 골자로 한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에 이어 뒤늦게 마련한 증시 제도 개선안이다. 그러나 극심한 정치 혼란 속에 주가지수 상승률이 지난해 주요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밸류업은커녕 밸류다운되면서 빛이 바랬다.

증시 진입·퇴출제도를 지금처럼 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계속돼왔다. 금융당국의 땜질식 처방에 현실과 정책 간 괴리는 더 벌어졌다. 지난 10년간 시가총액·매출액 요건에 걸려 상장폐지된 기업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한국 증시의 경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긴 내수침체와 기업 경쟁력 약화 같은 악재가 더해져 지난해 전체 시가총액이 249조원이나 감소했다.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떠나 미국 증시로 대거 옮겨간 이유도 이런 것이다.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과도하게 낮게 설정된 시총·매출액 기준을 올리기로 했다. 상장폐지 시총 기준을 2028년까지 코스피는 500억원, 코스닥은 3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현행 기준은 50억원, 40억원이다. 매출액 기준도 2029년까지 코스피는 300억원, 코스닥은 100억원으로 올린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3~4년 후 코스피와 코스닥은 전체 상장사의 7~8%가 퇴출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 비중을 배정물량 40% 이상으로 확대키로 한 것도 시장 왜곡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진작에 했어야 했다. 지난해 IPO 종목 77개 중 74개를 기관투자자가 상장일에 팔아치운 단타 행태에 공모가는 거품이 끼었고, 선의의 투자자들만 피해를 본 것이다.

좀비처럼 연명하는 상장기업도 수두룩하다. 국내 증시는 최근 6년간 연평균 99개가 상장, 증가율이 17%에 이른다. 일본(6.8%), 대만(8.7%)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반면 퇴출기업은 연평균 25개 정도로 주요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성장성이 없고 재무상태가 부실한 기업들이 빠르게 퇴출되는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증시 밸류업 과제가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투자자 보호와 혁신·우량기업 우대 등 다양한 밸류업을 모색해야 한다. 올 3월 재개하기로 약속한 공매도 등 금융당국도 일관된 기조로 정책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증시는 경기를 선행하는 바로미터다. 정치적 혼란에 경기침체가 겹쳐 증시 밸류업 방안만으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 몫인 후진적 지배구조 개선, 과도한 상속세제 개편, 개인투자자 보호 등과 같은 법률 개정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