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안 건설부동산부 차장
'문화지체(culture lag)'는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운 단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나 규범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을 뜻한다.
기자로 근무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의외로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현상들이 다양하게 발생하면 이에 대한 제도가 미흡하거나 부재한 데서 오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때면 각 정부 부처들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기존안을 개선하는 과정을 실행한다.
국토교통부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 분야에서만 해도 과거에는 없던 주거시설이 등장하면서 관련 제도가 만들어졌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생활형 숙박시설(생숙)까지 관련 제도들도 꾸준히 개선되거나 신설됐다. 최근에만 해도 주택 공급난 우려가 커지자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면적기준을 완화했다. 지난해에는 주거용 거주자가 늘어난 생숙에 대해 강제이행금을 유예하기도 했다.
교통분야도 다르지 않다. 자동차나 철도에 이어 항공이 생기고 드론이나 도심항공교통(UAM)까지 새로운 교통 수단이 등장하면서 관련 제도에 대한 방안은 매번 업데이트되고 있다. 올해는 완전 무인자율주행이 시범 시행되는 것을 앞두고 고속도로에 자율차 시범운행지구가 생기는가 하면 드론이 보편화되면서 드론 특별자유화구역도 확대한다고 한다.
이 같은 제도들은 면적이 몇 ㎡이고, 용적률은 또 몇 %인지, 제한속도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까지 매우 구체적이다. 면적 1~2㎡에 따라 건축설계가 달라지고, 허용되는 이동거리에 따라 교통여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정 범위에 따라 안전 문제 역시 달라진다. 제도적으로 명시된 규정 안에서는 사고가 발생해도 제도 내에서 대응과 조치가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주요 정책에 대한 사안을 취재할 때도 제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 질문이기도 하고 답변 역시 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브리핑을 경험했다. 비교적 명확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각종 규정에 대해 답변이 없는 브리핑이 이어졌다. 방위각(로컬라이저) 설치규정을 질문했는데 '더 파악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에 항공이 운항되기 시작한 시점은 그리 최근은 아니다. '문화지체'라고 보기엔 다소 오래된 사회 변화다. 설마 아직 제도가 없거나 고무줄 형식인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소신 있게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여건도 필수다.
광주 화정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국토부의 관련 제도는 더 촘촘해졌다.
jiany@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