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확실성에 中企 수출 회복 기대감 약화
대기업도 美통상정책 불확실성 확대에 투자 미뤄
밸류업 추진 고환율에 은행권 자본관리 필요성↑
한은 “신성장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 강화 필요”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은행 기업대출이 8년 만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한 가운데, 은행권도 건전성 관리 강화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인 결과다. 한국은행은 투자 위축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기업의 신성장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銀기업대출,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첫 감소 전환
한국은행 제공.
27일 한은의 ‘최근 은행 기업대출 둔화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4·4분기 은행 기업대출은 전분기 대비 1조1000억원 감소했다. 이는 산업은행의 STX조선해양 및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출 출자전환 등으로 지난 2016년 4·4분기 중 8조3000억원 감소한 이후 처음이다.
특히 4·4분기 중 기업대출 둔화는 연말 계절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그 폭이 분기 기준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4·4분기 기업대출 둔화는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모두에서, 업종별로도 대부분 업종에 걸쳐 나타났다.
한은은 기업대출의 둔화 배경을 수요와 공급 측면으로 나눠 분석했다. 우선 수요 측면의 경우 △경기 불확실성 증대 △개인사업자 어려움 지속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전반적인 기업들의 대출수요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법인은 상반기 중 수출호조 등에 따른 신규 수주증가, 가동률향상 등에 힘입어 시설자금 수요가 확대됐으나 하반기 중에는 수출 회복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관련 자금수요도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중소 제조법인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해 1분기 65에서 4분기 56까지 ᄄᅠᆯ어지며 2014년~2023년 평균치(69)를 크게 하회했다.
대기업의 경우 미국 신정부 정책 방향, 중동지역 정세 등 대외 불확실성 증대로 대규모 신규 투자를 유보하고 유동성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는 내수 부진 등으로 폐업이 늘어나면서 사업장 정리 과정에서 대출 상환이 함께 증가했고, 신규 창업이 소규모 영세업종에 집중되면서 초기 투자 및 운전자금 수요도 둔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부동산업 대출수요도 하반기 들어 대출금리가 반등하고 부동산 가격상승 기대가 약화되면서 크게 둔화됐다. 부동산업 대출 증감 규모는 지난해 1·4분기 4조3000억원에서 4·4분기 2조원 내외 수준으로 절반 넘게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 “투자 위축, 성장잠재력 훼손 가능성”
한국은행 제공.
공급측면의 경우 대출자산 수익성·건전성 관리가 강화되고 최근 밸류업 추진, 환율 상승 등으로 자본비율 관리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 은행들의 기업대출 축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먼저 지난해 주요 은행들은 기업대출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면서 4·4분기 들어 수익성 관리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영업을 빠르게 축소했다. 한은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10월 말 기업대출 실적 달성률이 90%를 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주요 은행들은 2024년 11월부터 기업대출 프로모션 종료, 기업대출감축시 성과평가(KPI) 가점 부여, 영업점의 금리 전결권 제한 등의 조치를 실시했다. 아울러 신용위험 관리를 위해 중소기업대출 부실채권 매·상각을 확대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연체율 상승폭이 큰 업종에 대한 대출 심사도 강화했다.
또 최근 밸류업 추진, 환율 상승 등으로 자본비율 관리 필요성이 높아진 점도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의 축소요인으로 작용했다. 은행들이 내부등급법으로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하는 경우 기업대출은 40~42%, 가계대출 19~21% 내외의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한은의 모니터링 결과, 올해 주요 은행들의 기업대출 목표치가 하향 조정된 데에도 이러한 자본비율 관리 필요성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대내외 불확실성 등으로 경기 하방리스크가 높은 상황에서 기업 자금조달 위축이 성장 모멘텀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기업들의 투자위축이 성장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성장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권규빈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조사역은 “개인사업자의 경우 내수업종 업황 부진 및 창업시장의 구조 변화에 따른 불황형 수요 둔화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의 실효성을 높여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신용공급이 ‘가계 및 부동산 부문→기업 및 신성장 부문’으로 전환돼 경제 전체적으로 자금 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도록 계속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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