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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개헌·後대선' 골든타임… 의회 향한 국민신뢰 더 커질 것” [87년 체제를 넘어, 개헌론 분출 (중)]

정대철 헌정회장 인터뷰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충형
'이원집정부·4년중임' 바람직
국민 뜻은 계엄 재발 막는 것
방향타 쥔 거야 동참 절실
차기 대선 때 국민투표 붙여야

“'先개헌·後대선' 골든타임… 의회 향한 국민신뢰 더 커질 것” [87년 체제를 넘어, 개헌론 분출 (중)]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26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개헌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선(先)개헌 후(後)대선' 정치일정으로 조속한 개헌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1987년 이후 지금까지 38년동안 집권한 사람, 집권할 사람 모두 다 개헌을 하자고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사전에 선(先)개헌 후(後)대선 정치 일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26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개헌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까지 국내 정국이 혼란스러워 지면서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다시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12.3 비상계엄을 통해 확인된 만큼,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 회장은 "87년 체제에서는 가장 요구됐던 것이 대통령 직선제였다"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았다. 그런 결과로 비상계엄 사태까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람직한 개헌 방향으로는 의원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4년 중임제 모델이 꼽히고 있다. 의원 내각제는 의회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은 대표가 총리가 돼 행정부인 내각의 책임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인 일본이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 회장은 "개인적 소망으로는 의원 내각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민적 요청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며 "국민들의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의원 내각제 보다는 이원집정부제+4년 중임제 모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 내각제가 절충된 것으로, 내란·전쟁 등의 비상시에는 대통령이 행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지만 평상시에는 총리가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행사하며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 등의 권한만을 가지는 제도를 뜻한다. 정 회장은 "이원집정부제는 책임총리제, 양원제(상원제 신설), 지방분권 강화를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의 적기로는 현직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 있는 지금으로 내다봤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탄핵 심판 중 가능한 빨리 원포인트로 개헌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며 "가능한 탄핵 기간 내에 하면 좋지만 만약 상황이 안되는 경우에는 차기 대통령 선거와 국민투표를 같이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개헌에 필수적인 여야 합의를 위한 만남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여당의 경우 개헌에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 회장은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만났는데 흔쾌히 원포인트로 단기간에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 찬성했다"며 "도리어 이번 기회를 통해 광범위하게 개헌을 해도 좋다는 의견을 냈다. 헌정회 의견과 완전히 일치했다"고 전했다.

다만, 개헌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야당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경우 최근 진행된 여야 원로모임에서 개헌을 위한 여야 합의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개헌에 대한 의견을 재촉하고 있지만 '연구를 해보겠다'는 답만 받았다"며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을 만나 이 대표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는 야당이 개헌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야당도 동의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 회장은 "국민의 60~70%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고,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개헌이 꼭 필요하다"며 "최상의 가장 절실한 정치개혁 방안이 개헌이기 때문에 결국 야당도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역설했다.

정 회장은 개헌의 키를 쥔 이재명 대표를 향해서는 개헌에 꼭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회장은 "이 대표가 포용력을 갖고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 절실한 정치개혁을 위해 개헌을 주도해 국민적 지지를 크게 증폭시켜줄 것으로 믿는다"고 당부했다.

개헌 논의가 촉발된 12.3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공로는 국민에게 돌렸다. 정 회장은 "군인들과 경찰이 국회로 들어왔을 때 보좌진들이 군인들을 막고 경찰 방패를 뺏는 모습을 봤다"며 "그런 상황에도 단 한명도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 없고 군인과 경찰들 중에는 머리를 긁는 사람도 있었다. 본인들도 이건 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국민들의 뜻이 비상계엄을 막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원로로 한국 정치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실종된 정치 회복을 위해 △제대로된 민주주의 기본교육 △진영 논리에 대한 상호 인정 △거부권·탄핵 등 힘의 논리 자제 △대통령 책임 등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지구상에 나라가 234개가 있는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10위권에 들어가 있을 만큼 발전을 했다"면서도 "그런데 정치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234개 나라 중에 100위권이 넘는 후진국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가시적 발전은 이렇게나 해놓고 정치는 너무나 창피하다"고 짚었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지방법원 난동 사태에 대해서는 향후 심리적·물리적 내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반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만큼, 이들이 서로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정 회장은 "법원에 들어가서 난동을 피우는 장면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보수와 진보가 서로 집회를 하다가 맞붙는 경우 내정상태로 번질까 대단히 우려스럽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뜻 있는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이 그러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했다.

syj@fnnews.com 서영준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