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
"美기업, 높은 통행료 지불" 주장
취임 연설서도 "되찾겠다" 공언
파나마 대통령 "영원히 우리 것"
미국의 파나마 침공 기억하고 있는 파나마 국민들 불안
지난 22일(현지시간) 대형 화물선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실리콘밸리=홍창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운하 환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파나마가 지난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이 성명을 내고 "파나마 운하는 영원히 파나마 국민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36년 전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파나마 국민들은 다시 한번 파나마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이자 동맹국에 휘둘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다. 파나마 국민들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가 미국을 존중하는 것처럼 미국이 파나마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벌써부터 미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미 국무장관, 첫 해외 방문지 파나마
25일(현지시간) 미 언론들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 일정으로 파나마를 시작으로 중앙 아메리카를 방문한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파나마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 연설에서 "미국은 파나마로부터 매우 나쁜 대우를 받았고 파나마의 약속은 깨졌다"면서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중국에 넘겨주지 않고 파나마에 넘겨준 만큼 이제 이를 다시 되찾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파나마 정부는 트럼프의 취임 연설 직후에 파나마 운하 항만 관리 업체인 홍콩계 CK 허치슨 홀딩스에 철저한 감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홍콩계 CK 허치슨 홀딩스는 지난 1997년에 파나마에서 항만 운영권을 처음 획득했고 오는 2047년까지 운영권을 확보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미국 선박들이 높은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만을 표명했다. 그러나 지난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협상했던 파나마 운하 이양 협정의 일환으로 체결된 중립 조약에 따라 파나마는 모든 국가에 대해 관세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에 특별 대우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파나마 정부측의 설명이다.
파나마 운하의 부관리자인 일리아 에스피노 데 마로타는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를 통해 "중국은 파나마 운하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파나마와 중국 기업과 체결된 모든 계약은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나마 운하는 100% 파나마인이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국가에 대해 중립적이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이 1989년 파나마를 침공한 후 파나마는 중앙아메리카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됐고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이 됐다. 파나마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현재 파나마 대통령인 호세 라울 무리노와 같은 우파 성향의 친기업 정부를 선출하게 했다. 파나마는 미국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며 미국 기업들에게 물류 거점으로 인기가 높다. 은퇴한 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파나마에서 축구보다 야구가 더 인기가 있고 수도 주변의 고속도로에는 미국식 쇼핑몰이 늘어서 있다. 미국에 관심이 있는 파나마 사업가는 중국 투자가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한다.
■미국 파나마 재침공 가능성 낮지만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지난 1989년처럼 군사적 침공을 단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파나마 국민들의 수는 적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에 미군을 투입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게 파나마 국민과 정부의 생각이다. 파나마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인구 450만 명의 파나마에는 군대가 없고 전쟁 경험도 거의 없다"면서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든 보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의 엘 초릴로 인근에 있는 1989년 미국 침공 당시 사망한 수백 명의 파나마 국민을 기리는 기념비는 중앙아메리카 국가가 미국에 반기를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상기시켜 준다.
파나마의 외교부 장관 겸 최초의 파나마 운하부 장관을 지낸 호르헤 에두아르도 리터는 "중국이 미국이 소홀히 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리터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냉전 이후 미국은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그때 중국이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1997년 미군 남부 사령부를 파나마에서 마이애미로 이전시켰다. 이어 1999년 미국 정부는 중앙아메리카 국가에 있는 대규모 공군, 해군, 육군 시설을 폐쇄했다. 이후 파나마에 있었던 미 공군 기지는 비즈니스 파크로 용도가 변경됐다.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 있는 유일한 군사 시설은 온두라스의 마약 방지 기지다.
만약 미국이 파나마 운하권을 되찾기 위해 파나마에 대한 보복을 단행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외교적, 정치적 피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라이언 버그는 "트럼프가 파나마를 위협하는 것이 실제적 군사적 위협인지 아니면 미국이 현재 홍콩계 허치슨이 운영하는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계약을 따내려고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없다"고 진단했다.
버그는 "트럼프가 중국이 파나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면 미국 기업이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파나마운하는 파나마 해협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약 82km 길이의 인공 수로로 지난 1914년에 완공됐다. 파나마 운하는 남아메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항로로 전 세계 무역량의 약 4~5%를 차지하며 160개국의 1700개 이상의 항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해상 운송로다.
theveryfirst@fnnews.com 홍창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