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금융부
"바다 끝에 낭떠러지는 없었다."
스페인 이사벨 1세의 후원으로 1492년 신대륙 탐험에 나섰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당시 인도, 중국 등이 '지구의 끝'이라고 여기던 유럽인들의 편견을 뒤로하고 배에 올랐다. 망망대해 가운데서 두려움을 느끼던 선원들이 배를 돌리라며 반란까지 일으켰지만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해 신항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 특유의 무모함이 유럽인들에게 '블루오션'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해를 맞이한 보험업계는 '레드오션'에 잠식돼 있는 모습이다. 한화생명·손보가 나란히 중증심장·혈관질환까지 보장하는 '뇌심H 건강보험'과 유병자 고객 보장을 늘린 '한화 더 경증 간편건강보험'을, ABL생명이 '건강N 더보장 종합보험'을 출시했으며 DB생명과 KB손보, 현대해상 등도 연이어 건강보험을 내놨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고령자·유병자 시장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건강보험 등 보장성보험 판매가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것 또한 보험사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그 안에서도 보수적인 영업 기조를 이어가는 금융사 입장에서 손실을 보지 않는 안정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단기적 수익성이라는 '나무'에 사로잡혀 장기적 성장이라는 '숲'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최근 만난 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손보험 하나, 암보험 하나씩만 있으면 되는 구조인데 얼마 안 가서 고갈될 수요에 올인하고 있는 셈"이라며 "이대로라면 보험 산업이 지속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제는 보험업계가 '불안정성이 초래할 손실'이라는 낭떠러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신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호우·태풍 등 자연재해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 데 따라 지수형보험 등 기후 관련 상품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오는 2050년에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국민연금 기금을 넘어서 최대 규모의 노후소득 적립금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 만큼 퇴직연금 시장 또한 보험업계의 중요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당연히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막막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찰나의 눈총과 고난을 딛고 블루오션의 선두주자로 설 것인지, 안정성을 좇다가 레드오션 속 후발주자 역할을 되풀이할지는 보험사들의 선택에 달렸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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