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기업과 옛 신문광고] 양돈농장이었던 에버랜드

[기업과 옛 신문광고] 양돈농장이었던 에버랜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게 전자산업을 해 보라고 권유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원래는 중화학공업을 하라고 했는데, 이 회장은 전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경기 수원 매탄동에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선 것은 1969년 10월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초창기 삼성전자의 인력은 단 36명이었다. 경남 울주군 삼남읍에도 더 넓은 공장이 들어섰는데, 현재 이차전지를 생산하는 삼성SDI 공장이다.

농업에도 관심을 갖고 농공병진(農工竝進) 정책을 추진하던 박정희는 1968년 호주와 뉴질랜드에 다녀온 뒤 재벌 그룹에 축산업을 하라고 권유했는데, 이 회장이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이듬해부터 경기 용인 포곡읍 일대의 드넓은 땅과 산을 사들였다. 전체 면적이 물경 450만평, 14.8㎢로 여의도의 다섯배다. 넓은 땅을 매입하고자 지주 2000여명을 설득, 땅값을 치렀다고 한다.

이 땅에 이 회장은 거대한 농원 겸 놀이공원을 조성했다. 1976년 4월 18일 문을 연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이다(조선일보 1976년 4월 4일자·사진). 이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보면 미국의 디즈니랜드나 일본의 요미우리랜드 같은 테마파크 조성을 꿈꿨던 듯하다. 초기의 용인자연농원은 말 그대로 농업 시범단지이기도 했다. 동·식물원과 어린이 동산으로 꾸며진 '패밀리랜드'와 함께 양돈단지, 유실수단지, 양묘장, 양어 저수지를 뒀다. 패밀리랜드만의 면적은 약 20만평이었다. 현재의 전체 에버랜드는 약 45만평이다. 나머지 땅과 산은 골프장과 연수원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개장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접근성이었다. 이 회장은 영동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나들목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삼성 돈을 들여 인터체인지를 만들었다. 지금의 마성IC다. 농원 전용으로 개장 1주일 전에 개통됐다. 1987년 사망한 이 회장은 고향 경남 의령이 아닌, 자신이 공을 들인 에버랜드에 묻혔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용인 땅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이름났다.

설탕과 비료 등을 생산하던 삼성은 미래 신사업으로 전자와 축산을 정하고 용인자연농원에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 사육한 돼지가 2만5000여마리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인근 주민들에게도 아기 돼지를 무료로 나눠주고 사육을 권유했다. 삼성이 대량 사육을 하면서 소비자들은 돼지고기를 싼값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삼겹살이 대중화된 시기가 이때부터라고 한다.

지하철 요금이 40원일 당시 입장료가 600원으로 싸지 않았지만, 개장 첫날 관람객이 2만5000여명이나 몰려들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단체관람을 오기도 했다. 사자 20마리로 조성한 국내 최초의 라이언 사파리는 관람 첫 순위였다. 제트열차, 회전목마, 스포츠카, 신나는 보트, 비행의자, 데이트컵, 미니카, 아프리카탐험 등 놀이기구들도 설치됐다.

그러나 양돈사업은 분뇨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다. 분뇨 방류로 인근 하천이 심하게 오염되고 악취를 발생시킨 것이다. 용인자연농원의 동쪽에는 경안천이 있는데,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호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수사기관이 나서 돼지 분뇨를 방류한 혐의로 용인자연농원 임원 3명을 구속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용인자연농원은 이후에도 양돈사업을 계속했지만 규모를 줄여나갔다. 이건희 회장은 축산업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삼성이 양돈사업을 완전히 접은 때는 1991년 무렵이다.


용인자연농원은 이 창업주가 구상한 대로 놀이공원으로 완전히 바뀌어 갔다. 개장 20주년이었던 1996년 '애벌레'와 비슷하다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에버랜드로 이름도 변경되고 부지와 시설을 확장해 온전한 놀이공원으로 변모했다. 세계 최대 크기라는 워터파크도 개장해 인기를 모았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