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딴소리 신뢰 훼손
정부, 통상협력대사 검토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후보자. /사진=뉴시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다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약속한 보조금 지급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 지우기 차원에서 이뤄진 작심 발언인데, 민관의 정교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본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이 그동안 미국의 선량함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하면서 관세 압박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외교채널을 총동원해 피해를 줄여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29일(현지시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의 보조금 지급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와 확정한 계약을 이행하겠느냐는 의원 질문에 그렇게 답한 것이다. 그는 "반도체 제조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훌륭한 착수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재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의 딴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때부터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칩스법 철회 주장이 트럼프 측근들 사이에서 나왔다. 대선 후 요직에 지명된 인물들도 번갈아가며 낭비적 보조금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주장했었다. 급기야 최근엔 백악관이 칩스법 등에 포함된 연방 차원의 보조금 지출 잠정중단 지시까지 발표했다. 연방법원에 제동이 걸려 지시를 철회하긴 했으나 여전히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임 정부에서 이뤄진 계약이지만 국가 간 약속을 이렇듯 막무가내로 뒤집으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뒤처진 반도체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제조업 부흥과 중산층 부활을 목표로 IRA와 칩스법을 만들었다. 초당파적 지지로 법이 통과됐고, 동맹과 기업들은 이것이 미국의 의지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투자를 결정할 때 정권이 바뀌면 약속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누가 했겠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미국 생산시설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에 투입하기로 한 투자금액은 370억달러가 넘는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 메모리용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에 40억달러 가까이 투입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 얻는 것은 명백하다. 양질의 일자리와 지역경제 부흥이다. 국내 기업들의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공로는 이미 여러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앞서 바이든 정부가 두 기업에 지급을 보장한 보조금 9조5000억원은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이제 와서 트럼프 정부와 무슨 상관이냐고 딴청을 부리는 것은 동맹국 간 온당한 태도라 할 수 없다.
관세를 포함한 트럼프 정부의 거친 압박에도 지혜로운 대처를 서둘러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30일 제안한 대로 통상외교 협상을 전담할 통상협력대사를 임명하고 미국 현지에 파견,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맹의 가치와 한국 기업의 기여도를 제대로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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