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중국의 신생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성공이 전세계를 뒤흔든 가운데 미국과 AI 경쟁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쥐게 될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중국이 딥시크 성공을 바탕으로 AI 무기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AP 연합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R1이 전세계에 충격과 희망을 동시에 주고 있다.
구체적인 총액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수억달러가 드는 미국 AI 모델과 달리 딥시크는 백만달러 단위로도 이에 못지않은 AI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막대한 미국의 자본력을 동원한 AI 개발 경쟁에 나설 꿈도 꾸지 못했던 자본이 충분치 않은 나라들도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동시에 미국에는 그동안의 엄청난 견제가 되레 중국의 ‘AI 굴기’를 가능하게 만든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큰 숙제를 남겼다.
순식간에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AI를 개발하면서 미중 AI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AI 무기화에 따른 군사적 위협 역시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적이지 않은 스타트업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분석기사에서 딥시크의 성공은 이 스타트업이 중국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평가했다.
딥시크는 2023년 중국 헤지펀드 투자자 량원펑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1985년 생인 량은 수학과 통계학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퀀텀펀드 방식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며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가 만든 딥시크는 영국 딥마인드, 미국 오픈AI처럼 순수 연구소 개념으로 그 안에는 직위도, 직책도 없고, 돈 걱정 없이 연구만 하는 인력으로 채워졌다. 퀀텀펀드를 운용하면서 반도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바탕이 됐다.
중국 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스타트업들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엄청나지만 량은 결과를 신경 쓰지 않았고, 딥시크 연구원들은 부담 없이 연구에만 매진한 것이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한 중국 AI 투자자는 “딥시크는 중국 AI 기업들 가운데서도 독특한 곳”이라면서 “다른 빅테크나 대형 스타트업과 달리 정치도, 경영진 갈등도 없다”고 말했다. 이 투자자는 딥시크에는 직책이나 보고 체계도 없다고 덧붙였다.
560만달러
딥시크는 R1을 공개하면서 최종 훈련에 들어간 돈이 고작 560만달러(약 81억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억달러가 드는 미 실리콘밸리의 AI 비용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다만 함정은 있다.
딥시크는 오픈AI의 AI모델을 토대로 딥시크를 개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증류방식이다. 오픈AI의 핵심만을 추려 낮은 비용으로 AI를 개발했다는 의혹이 높다.
달리 말해 딥시크는 증류방식을 통해 오픈AI가 투자한 초기 비용을 건너뛸 수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방식이 AI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딥시크는 컴퓨팅 역량 구축을 비롯해 AI 모델을 개발하고 초기 훈련에 드는 비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최종 훈련에 든 560만달러 외에 추가 비용이 있지만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미 기업들에 비하면 훨씬 적은 비용을 투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가의 엔비디아 첨단 AI 반도체 수출을 미국이 차단하면서 딥시크는 저가, 저성능 반도체로 AI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패스트 팔로워인가 AI 분수령인가
딥시크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딥시크가 훌륭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R1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고, 메타플랫폼스 CEO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도 원하는 진전을 딥시크가 이뤘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딥시크 성공이 AI 업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속도의 발전을 이루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서 딥시크의 저비용 접근 방식이 AI 업계의 역학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딥시크를 비롯한 중국 AI 기업들은 선두주자를 빠르게 따라하는 패스트 팔로워일 뿐이라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방향을 정하는 대신 미 AI 기업들을 흉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픈AI 이사 출신인 조지타운대 AI 정책 애널리스트 헬렌 토너는 “딥시크의 성과가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면서 “미국과 중국간 경쟁의 판도를 바꿀 요소는 중국이 (AI) 최전선을 실제로 압박할 뭔가를 구축할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반면 딥시크의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딥시크로 인해 미중 AI 경쟁이 분수령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 리서치 업체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중국 기술주 애널리스트 틸리 장은 지난주 분석노트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장 애널리스트는 “딥시크의 최신 모델은 중국이 미국과 AI 경쟁에서 앞섰다는 뜻은 아닐지 모른다"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미 수출 통제 충격을 줄여주는 소프트웨어 혁신이라는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AI 선두주자 경쟁은 더 이상 누가 최고의 반도체를 확보할 수 있을지 만이 아니라 누가 이 반도체들을 가장 잘 활용하는 지로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딥시크의 성공은 AI 무게 중심이 대규모 반도체 확보 경쟁에서 반도체 효율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혁신으로 이동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AI 테마를 장악했던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예상보다 일찍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메타 등 AI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주도권을 넘기게 됐다는 뜻이다.
엔비디아는 딥시크 충격으로 지난주 주가가 15.8% 폭락했다.
소프트웨어 중에서는 폐쇄형보다 개방형(오픈) 모델이 부각되고 있다.
딥시크는 메타의 오픈소스보다 좀 더 제한적인 ‘오픈 웨이트(open weights)’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오픈소스와 유사하지만 코드나 데이터는 블랙박스처럼 공개하지 않는 방식이다.
메타의 오픈소스 AI는 코드와 데이터 등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해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변형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MS나 알파벳, 오픈AI 등은 폐쇄형 AI 모델이다.
군사위협
중국의 AI 발전은 군사위협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한 배경이 중국의 AI 부상을 막아 경제적인 우위를 유지한다는 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AI가 무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 AI 스타트업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중국이 미국과 견줄 정도의 AI 역량을 확보하면 이는 군사적 위협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아모데이는 딥시크의 성공으로 “중국은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AI 기술을 군사화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의 거대한 산업기반과 군사전략 이점이 결합하면 중국은 그저 AI에서 만이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역량을 확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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