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사회부 기자
역사학의 방법론인 사료비판은 결국, 수많은 진실(眞實·Truth) 속에서 사실(事實·Fact)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도쿄 유학 시절 서양사 선생님이 한 말이다. 사료(史料)에서 얻는 모든 정보는 사람의 믿음이 투영된 과거 일, 즉 진실이다.
정보 제작자가 제아무리 객관적으로 과거 일 그 자체, 즉 사실을 기술하려고 해도 그 기술의 범위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얻은 믿음을 벗어날 수 없다. 연구자는 그렇기에 그 어떠한 사료 속 정보라도 그것이 지닌 오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진실을 의심하는 행위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반(反)사회적 태도로 무작정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실을 다른 진실들과 비교하며 정보들을 교차검증하고, 여러 진실 속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정보가 무엇인가를 의식한다. 또 현재 읽고 습득한 정보가 타당한지를 문장의 서술구조에 기대어 따져보기도 한다. 이 역사학의 방법론은 비단 역사학의 연구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러 진실이 난무하는 우리네 일상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문제가 있다. 사료비판이 고도의 사고능력과 뛰어난 언어감각에 기댄 행위라는 점을 각설하더라도, 이것은 생업 등 바쁜 나날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기에 번거로운 일이다.
매일같이 자신의 진실들을 의심한다고 생각해 보자. 다 떠나서 성격이 더러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분업이란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에 따라, '일상판 사료비판'을 직업적으로 전담하는 존재가 현대사회에는 존재한다. 바로 언론이다.
이 사회적 분업이 최근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설 연휴 전까지 격했던 '관저 앞 집회'를 가면, '부정선거설'과 '한반도 공산화 작전' 등 자신들의 진실이 외면받는다는 이유에서 언론을 부정하는 이들을 쉽게 만났다. 서부지법 폭동 당시에는 기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언론이 '일상판 사료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시장 원리에 따라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대안으로 지목하는 존재가 일부 극우 유튜버인 점을 생각한다면, 보수 지지자들의 언론 부정은 언론의 사회적 가치와 무관한 듯하다.
언론이 유통하는 정보가 무작정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언론 역시 인간 행위의 부산물이므로 오류를 내포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언론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기자들의 경우 자신의 진실에 항상 의문을 제기하며 진실의 이면에 있는 사실을 캐내려 한다는 데 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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