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이재용 2심도 무죄, 잃어버린 시간 누가 책임지나

부당합병·회계부정 등 항소심 판결
10년 사법족쇄로 국가 경제도 손실

[fn사설] 이재용 2심도 무죄, 잃어버린 시간 누가 책임지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은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4년5개월 만이다. 법원은 쟁점이 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배력 여부 등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보고서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작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과 같은 판단이었다.

최종심이 남아 있어 삼성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힌 건 아니지만 2심 무죄판결로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상당히 해소됐다. 국정농단 이후 무려 10년째 사법 족쇄를 차고 있었던 삼성 입장에서나 국가경제를 감안해서도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앞서 이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2017년 2월 구속 수감됐다. 이후 풀려났다가 다시 2020년 이번 경영권 승계 사건으로 기소돼 지금까지 사법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허송한 셈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변의 시간이었다. 기나긴 침체기를 끝낸 인공지능(AI) 연구가 새로운 반도체 혁명을 불렀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물자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대항전의 중심이 됐다.

이 급박한 시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삼성이 수사와 재판에 발목이 묶였던 것이다. 삼성이 거대한 AI 변혁의 물결에 재빨리 올라타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중대한 인수합병(M&A) 결정이나 투자 판단은 결국엔 타이밍이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겪은 삼성의 시련기는 한국 경제로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기소가 애당초 무리였다는 비판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다. 검찰은 2018년 12월 본격 수사를 시작한 이후 이 회장을 두 차례 소환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2020년 6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거부했다. 수심위는 삼성의 혼란이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기소를 밀어붙인 결과가 지금의 무죄판결이다. 그사이 기업과 경제 피해는 눈덩이가 됐다.

기업이 글로벌 기준을 지키고 위법한 행위는 도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과 반기업 정서는 국가경제에도 이롭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선두에서 이끄는 주역이 기업이다.
기업에 대한 막연한 반감은 떨어내고 활력을 북돋아 주는 정책과 사회풍토가 절실하다. 이제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삼성은 부활의 시동을 걸기 바란다. 과감한 투자로 한국 대표기업이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정치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