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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3만명에 대한 배신

[기자수첩] 13만명에 대한 배신
정경수 사회부
"언론을 통해 나온 포고령을 보고 제가 서울청장에게 지시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5일 국회 통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경찰은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출입문을 막고 국회의원과 보좌진,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이 비상계엄 후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조 청장이 비상계엄에 동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조 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언론을 통해 계엄을 보고 알았으며, 계엄사령관 전화와 포고령에 따른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잠시나마 그는 계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피해 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조 청장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사기관은 수사를 통해 조 청장이 계엄 선포 3시간 전 대통령 안전가옥에 모여 계엄을 논의했고, 지시를 하달받았다는 혐의를 밝혀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본인이 한 말을 뒤집는 행동이 밝혀진 것이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조 청장의 행동은 경찰들의 공분과 실망을 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기준 경찰 인력은 총 13만1158명이다. 13만여명을 이끄는 경찰 수장의 거짓말에 일선 경찰들에게서 적잖은 실망감과 허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조 청장이 국회에서 처음부터 시인하고 사과했어야 한다는 실망감이 묻어나기도 했고,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의 수장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분노까지 경찰들의 감정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13만여명을 이끄는 수장이 내부결속을 풀어헤친 것처럼 보였다.

조 청장은 시민의 치안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의 대외 신뢰도도 무너뜨렸다. 치안의 기본은 신뢰다. 치안 시스템은 국가가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조 청장은 경찰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신뢰를 무너뜨렸다. 한 정치학 교수는 "이번 계엄은 시민들이 안전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느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이 안전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받았을 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의 수장은 거짓말이라는 배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일선 현장에서 뛰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경찰은 신뢰 회복을 위해 수사에 힘을 쏟아야 한다.
비상계엄 관련 경찰 수사는 마무리되어 가지만 법원을 침탈한 초유의 서부지법 사태 수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날 밤 안전에 위협을 느꼈던 국민들이 경찰을 지켜보고 있다. 경찰은 조 청장의 거짓말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좌고우면 말고 국민을 위한 수사에 매진할 때다.

theknight@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