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한국 프로야구가 지난해 첫 천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과 열기는 이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됐다. 치어리더의 응원, 다양한 먹거리, 각종 이벤트가 어우러진 야구장은 더 이상 단순한 스포츠 경기장이 아닌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진화했다. 특히 기아 타이거즈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일명 '삐끼삐끼' 춤으로 인기를 얻은 이주은은 올해 대만 프로야구팀으로 옮기면서 거액의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한국 야구의 뿌리인 고교야구의 현실이다.
지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이전, 한국 야구의 중심에는 화제를 몰고온 고교야구가 있었다. 최동원과 선동열, 두 투수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고등학교 때다. 최동원은 경남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가을, 전국대회 4강 이상 상위팀들이 초청된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최강이던 경북고등학교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선동열도 역시 광주일고 3학년 때이던 1980년 봉황대기대회 1회전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삼진 15개를 잡아내면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고교야구의 부흥기는 한국 야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대통령배, 청룡기 등 전국 단위 대회가 활성화됐고 TV 중계방송이 시작되면서 고교야구는 국민적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최동원, 선동열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기틀을 다지는 주역이 됐다.
그러나 현재 고교야구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팀 운영의 어려움, 노후화된 시설, 진학과 취업의 불확실성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에서 많은 학생 선수들이 진로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프로야구계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최근 롯데자이언츠와 파이낸셜뉴스가 협약을 맺고 진행할 '명문고 야구열전'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이는 단순한 대회 개최를 넘어 프로야구와 고교야구의 상생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야구 문화를 만들고, 젊은 선수들에게 꿈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이제 지역 고교야구팀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기적인 기술교류, 시설 공유,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이 가능하다. 이는 프로구단에도 장기적으로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할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고교야구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스포츠 혁신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진로지도, 인권 보호 등 종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 고교야구 지도자들의 처우개선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천만 관중이 보여준 프로야구의 인기는 우리 야구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성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뿌리인 고교야구의 건강한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프로야구계는 이제 고교야구를 단순한 선수 공급원이 아닌, 함께 성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천만 관중의 함성을 고교야구장으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 야구의 백년대계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천만 관중의 성과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할 것인가. 프로야구가 고교야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야구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스스로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다.
'2025 롯데자이언츠·파이낸셜뉴스배 명문고 야구열전'이 오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개최된다. 이 대회가 향후 고교야구 부활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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