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쫓고, 가자 지구를 미국이 오랫동안 점령하는 '가자 구상'을 내놓자 아랍과 유럽 각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AP 연합
아랍과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가자 지구 점령 구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쫓아내려는 시도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밤 미국이 가자 지구를 통치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220만 주민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아랍과 유럽 각국이 거세게 비판했다.
아랍 반발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를 반대해 온 아랍 국가들은 트럼프 제안에 즉각 반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5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없이는 이스라엘과 국교수립은 없다고 못 박았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 전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며 양보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을 설득해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도록 했다. 2기 들어 그는 이를 사우디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우디는 가자 지구 구상에 반발하며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 계획을 거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우디는 이미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침공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수교에 미온적이 됐다.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특히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으로 주민 약 4만7000명을 살해한 것을 ‘대량학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요르단과 이집트 역시 트럼프의 제안을 곧바로 거부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이전 제안도 거부한 바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 같은 인접국들은 이미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그 여파로 수년을 혼란 속에 지내야 했다.
요르단 왕실에 따르면 압둘라 국왕은 “팔레스타인 영토 합병과 주민 이주에 관한 어떤 시도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교장관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 지구에서 내쫓는 대신 신속한 인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들은 자기 땅을 지키고,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만도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는 것은 ‘심각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교장관은 “강제 이주 시도는 매우 심각한 범죄가 될 것”이라면서 “이 지역을 끊임없는 불안정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과 유럽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튀르키예도 하칸 피단 외교장관이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했다.
피단 장관은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우리나 그 지역 모두 가자 주민 추방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왜 갈등을 멈추는 대신 더 많은 갈등을 유발할 제안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유럽 반발
유럽도 곧바로 반발했다.
안나레나 베어백 독일 외교장관은 이미 1년이 넘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가자 지구를 미국이 점령한다는 계획은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혐오를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어백 장관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 지구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는 것은 어떤 해결책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케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집에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들이 재건하도록 해야 하며 이 재건을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는 팔레스타인을 독립시켜 이 지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가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다들 내 제안 사랑”
이스라엘은 트럼프의 제안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극우와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반기고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하마스와 진행 중인 인질, 수감자 교환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랍계 주민들도 있다.
특히 아랍계 주민들을 대표하는 정당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는 ‘위험한 망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극우와 보수를 중심으로 화약고 같은 팔레스타인이 미국의 점령으로 안정되면 이스라엘에도 더 낫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5일 자신의 가자 지구 계획이 환영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팸 본디 법무장관 취임식 자리에서 가자 지구 계획에 대한 국제 사회 반응을 기자들이 묻자 “모두가 그것을 사랑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는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가자 구상’을 내놨다.
부동산 개발 업자인 트럼프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가자 지구를 장기간 점령해 개발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독립 외에 대안 없다
직접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트럼프의 가자 구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압바스 수반은 트럼프 구상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팔레스타인이 독립하는 두 국가 해법 만이 이 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이후 가자 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도 트럼프의 구상은 ‘무책임한’ 것이라면서 “우리 주민들과 대의에 적대적인 것으로 이 지역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이곳의 불에 기름만 붓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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