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시장 한복상점가 가보니
비혼 늘고 젊은세대 혼례복 안 맞춰
대여도 줄어 250곳중 150곳 남아
한국인 손님보다 외국인 더 많아
전 점포 대여 확대에도 효과 미미
일상에서 한복 입을 기회 늘려야
지난 3일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부산진시장 내 점포 모습. 사진=최승한 기자
지난 3일 오전 한산한 모습의 부산진시장 한복 상점가.
안나씨(왼쪽)과 아기 100일 잔치용 한복을 구매한 안나씨의 친구 부부 모습.
"예전엔 한복집마다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손님 없이 마감하는 가게가 많아요."
지난 3일 부산진구 범일동 부산진시장에서 만난 김말연 부산진시장 주단부 부녀회장(60대)은 매대에 놓인 한복 원단을 정리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설 연휴가 끝난 시장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오가는 손님도 드물었다. 한복 수요 감소로 인해 전통 한복점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한복 소비 감소로 점포 수 40% 뚝
부산진시장은 서울 동대문시장,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전국 3대 혼수 전문시장으로 꼽힌다. 1913년 조선 방직공장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섬유·의류 중심 시장으로 성장했으며 한복, 폐백용품, 예단 상품 등을 한자리에서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최근 한복을 찾는 손님이 급감하며 시장의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김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한복 관련 점포가 250여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150여개로 줄었다"며 "손님이 오지 않으니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산진시장의 한복점 상인들은 "결혼식 한복 수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시장이 위치한 범일동에는 예식장이 몰려 있어 결혼 시즌이면 한복 수요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혼례 절차를 간소화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한복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30년 넘게 한복점을 운영한 정호선씨(70대)는 "예전에는 부모들이 '결혼식엔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신랑·신부가 직접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복을 줄이거나 없애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한복은 구매비용이 부담되고 보관도 번거롭다 보니 대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대여 수요마저 줄어 한복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들에게 더 인기 있는 한복
한복이 국내에서 점점 외면받는 가운데 정작 외국인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20년째 부산에 거주 중인 러시아인 안나씨(40)는 이날 아기 100일 잔치를 준비 중인 친구 부부와 함께 한복점을 찾았다. 그는 "고려인 남편이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고, 좋은 품질의 한복을 직접 보고 살 수 있어 부부가 만족했다"고 전했다.
그가 방문한 가게의 이인섭씨(50대)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 관광객이 한복을 많이 찾는다"며 "반면 한국 젊은이들은 한복을 입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유학생들이 귀국할 때 가족 한복을 사 가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들이 한복을 더 반기고 관심을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전통시장 변화 시도
부산진시장 내 한복 상인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맞춤 한복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지자 대부분의 점포들이 대여 서비스를 병행하며 운영 방식을 바꿨다.
전통 한복 문화를 되살리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시장 상인들은 성년의 날을 맞아 20세 청년 110명을 초청해 한복 체험행사를 열었으며, 신혼부부 10쌍에게 무료 한복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젊은 층이 직접 한복을 입어보도록 유도해 관심을 높이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김 회장은 "한복 체험 기회는 늘었지만,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진시장 상인들은 "한복이 다시 결혼식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한복을 입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전통 문화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 차원의 한복 착용 장려정책이나 미디어 홍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일본은 기모노를 전통문화로 인식하고 성년의 날, 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에서 입는다"며 "우리도 한복을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진시장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뿐만 아니라 시장 내 인프라 개선과 상인들의 서비스 질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한복이 단순한 전통 의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패션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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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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