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국제부장
기술 격변기에는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가 시장을 독식한다. 미국은 그렇게 성공해왔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미국은 또다시 다른 나라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거대자본과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기술 독점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국내 빅테크 기업의 AI 전문가는 미국을 빼고 모두 AI의 변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를 증명하듯 올 초 오픈AI의 창업자인 샘 올트먼과 일본의 투자회사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AI분야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720조원이다. 우리 정부의 연간 예산이 670조원가량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들의 발표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AI 주도권을 미국이 확실히 굳혔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트럼프의 취임사처럼 모든 나라가 미국을 부러워했다.
반전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유명세로는 세계적 기업이 된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등장했다. 딥시크의 저비용, 고성능 및 오픈소스 언어 모델에 전 세계가 놀랐다. 이후에는 기술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고, 그다음은 개인정보 등이 과도 수집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놀랄 만한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것에 주목했다. 중국의 AI지원 정책, 청년과학자 육성정책이 그것이다. 실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140명 정도의 연구개발팀은 대부분 중국 국내파였다. 20~30대의 칭화대, 베이징대 등 중국 최고 대학의 재학생, 석·박사들이 똘똘 뭉쳐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량원펑이 지난해 7월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은 중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줬지만 우리 역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중국과 미국의 AI 기술격차는 1~2년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창조(미국)'와 '모방(중국)'이라는 격차를 중국이 넘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협업하는 기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도 선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제2, 제3의 량원펑이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이공계 출신 대학 졸업생 수는 해마다 수백만명이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을 이끄는 핵심 인력인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자는 2022년 4만7000여명으로, 전체 박사학위 취득자(8만2000명)의 57%에 이른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은 지난 2021년 중국의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가 2025년 미국의 약 2배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재는 어디에 있는가. 한 대형 입시학원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의약학계열 지원자(정시모집)는 지난해보다 18% 증가했다. 반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광주과학기술원·울산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4개 과학기술원 정시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28.2%(1899명) 줄었다.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현상이다.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는 AI 유니콘 기업이 한국에는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혁신을 이끌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과거 IT기술 격변기에는 지금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과 인터넷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선구자 같은 기업들이 있었다. 네이버, 엔씨소프트, 넥슨 등이 대표 기업이다. 2010년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는 카카오, 우아한형제들, 쿠팡 같은 기업들이 탄생했다. 한때 혁신을 이끌었던 이들은 현재 보이지 않는다. 여러 사정으로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시선과 정부 규제,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압박 등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특히 기업 및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들을 은둔형으로 바꾸고 있다. 인재들의 유입과 함께 기존 인재들도 혁신을 계속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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