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출소 서비스 등 미끼로 고객 관리
의료용 마약 신고없이 불법투약
수사망 피하기 위해 대포폰으로만 연락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가 의료용 마약을 신고하지 않고 불법 투약한 A씨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 제공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가 A씨 일당으로부터 확보한 진료기록 내역.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 제공
[파이낸셜뉴스] 미용 시술인 것처럼 속이고 의료용 마약을 백여명에게 불법 투약해 수십억원을 벌어들인 60대 의사와 병원 직원 등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의료법 위반 혐의 등으로 60대 의사 A씨와 전·현직 병원 직원, 투약자 등 115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병원에 근무하면서 투약자의 수면 횟수 등을 상담한 A씨의 아내를 비롯한 실장 4명과 수면마취제를 직접 투약한 간호조무사 10명, 투약자 100명 등이 포함됐다. 투약자 중에는 전 프로야구 선수와 조직폭력배 등도 있었다. A씨는 지난해 11월 29일 구속 송치됐다.
A씨 등은 지난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3년 7개월에 걸쳐 의료용 마약류를 보고하지 않고 1만7216회 투약해 총 41억4051만원을 불법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마약류 투약기록 2703건을 미보고하거나 거짓 보고하고 진료기록 559건을 거짓 작성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사용한 혐의도 있다.
2012년 개업한 이비인후과 전문의 A씨 의원에서는 의료 목적과 관계 없이 수면 횟수를 정해 수면마취제를 투약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수면이나 환각 목적으로 방문한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이나 레미마조람 등 수면마취제를 단독 투여하거나 마약류로 등록되지 않은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같이 사용해 사용량을 조정하며 식약처의 감시대상에서 피하고자 했다. 병원에서 내세운 미용시술은 형식적으로 진행하거나 생략하고 불법 투약자만을 대상으로 한 일요일 영업을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들 일당은 회당 20~30만원을 받고 약을 투여했는데, 현행법상 의료용 마약 투여시 식약처장 보고가 필수지만 미보고를 조건으로 내걸어 회당 10만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A씨는 서비스를 명목으로 투약자를 관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생일을 맞은 고객과 범죄로 교도소 등에 수감됐다 출소한 고객에게 추가 마약을 제공하는 등 서비스를 미끼로 고객을 유인했다.
A씨는 스스로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2023년 1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프로포폴 등의 수면마취제를 손님이 뜸한 야간이나 새벽 시간에 셀프 투약하거나 간호조무사를 통해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의료용 마약 투약기록을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보고하고, 진료기록을 가짜로 작성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마약류 취급보고에서 공급량과 사용량을 맞추기 위해, A씨의 가족과 간호조무사 명의를 도용한 사실도 발견됐다. 보건, 조세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로 수익을 관리하거나 탈세용 장부를 이용했고, 대포폰으로만 투약자들과 소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조사 결과 투약자는 총 105명으로, 검거된 100명과 사망한 4명, 서울 강남구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다 시비가 붙은 행인을 흉기로 위협한 일명 '람보르기니 남' 30대 남성 홍모씨로 확인됐다. 홍씨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추가 입건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투약자는 20~30대가 83%로 가장 많았는데, 최연소 투약자는 26세다. 가장 많은 양을 투약한 이는 하루 동안 28회에 걸쳐 8~10시간 동안 마약을 불법 투약했다. 가장 많은 금액을 쓴 투약자는 9개월여간 74차례 방문해 총 2억 2400만원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구치소에 있는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씨는 A씨의 의원에서 지난 2023년 10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총 5차례 투약해 추가 입건된 것으로 전해졌다. 투약자들은 암암리에 병원을 소개시켜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에 검거된 후 혐의를 시인했다. 이후 마약류 취급정지 1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고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초기에는 프로포폴만 사용했지만,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허점을 파고들어 함께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경찰은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 전 대량 불법 유통 가능성이 있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은 "투약 횟수와 기간, 지불 금액을 보면 마약류에 대한 중독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A씨 등은 투약자들을 마약류 중독에 빠뜨려 돈벌이 수단화하는 '마약 판매상'의 전형적인 수법을 보여줬다"며 "현행법상 미흡한 마약류취급자에 대한 처벌 강화 논의가 필요하다"이라고 강조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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