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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순이 1600호' 논란, 더 이상 방치 안 된다

[강남시선] '순이 1600호' 논란, 더 이상 방치 안 된다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부산의 야구 사랑은 유별나다. 야구 중계를 틀어 놓은 버스에서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것은 일상이다. 롯데자이언츠를 위한 편파 방송은 기본. 그래서일까.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산 사직구장 인근 식당은 경기 결과를 놓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로 늘 만석이었다. 이기면 이겼다고 한잔, 지면 졌다고 한잔. 사직구장은 롯데자이언츠를 애증하는 술꾼들로 넘쳐났다. 마무리는 한결같았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뻐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그 누구라도 롯데자이언츠 공식 응원가인 '부산갈매기'를 한 소절 선창하면 여기저기 거들며 떼창으로 이어진다. 순이를 목 놓아 외쳐야 술자리가 끝났다. '영희와 철수'처럼 순이는 돌이와 함께 여자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접미사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뉴욕스토리' 등으로 유명한 감독 우디 앨런의 한국계 아내 이름이 순이 프레빈으로, 순이는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최근 '순이'라는 이름이 전남 영광군 앞바다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국 국적의 대형 크레인 선박 '순이(ShunYi) 1600호'가 그 주인공.

정부는 지난 2023년 12월 국내 최대 민간 해상풍력 사업인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전남 영광군 해상 일대에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그 규모만 2조3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인허가는 국내 업체가 받았지만 실제 투자하고 장비와 제품을 공급하는 곳은 해외 업체라는 점이다.

지분 투자를 한 곳은 태국 기업, 풍력터빈은 중국이 지분을 보유한 독일 회사, 해저케이블 외부망은 중국에서 공급받는다. 국내 해저지도가 노출되고 민감한 군사정보인 해군 훈련지역은 물론 잠수함 이동 동선도 알려지는 만큼 그 사업 진행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불법과 편법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기 하부구조인 해상구조물 지지용 대형 기둥(모노파일) 설치 건설작업에 사용되는 '순이 1600호'가 선박인지 장비인지를 놓고 법적 논란이 일었다.

당초 순이 1600호는 '기타선박', 즉 '장비'로 신고되어 예인선을 통해 낙월해상풍력 현장으로 이동했다. 세계 각국이 자국 해운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의 항만과 항로를 오가는 선박을 자국 국적으로 제한하는 조치인 '카보타지(Cabotage) 규정'에 중국 국적이 문제가 되자 우회경로를 택했다. 순이 1600호를 들여온 업체 측은 국내에 적합한 장비가 없어서 세관에 정식으로 신고하고 수입통관 절차를 거쳐 도입했다는 입장이다.

합법과 편법, 불법 논란이 일어났지만 정부의 대응은 한없이 소극적이다. 해양수산부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강경 대응을 피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해운·조선업의 개별 이슈로만 바라보고 있다. 외교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실상 손 놓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와 해양 건설업체들은 엄격한 규제를 준수하며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해외 업체가 편법과 불법을 오가며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해상풍력 사업 자체가 외국 기업에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국내 관련 업계와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해양수산부는 순이 1600호가 적법한 절차를 우회해 입항했다는 선박법 위반으로 해양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곧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순이 1600호 논란은 단순히 해상풍력 사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중국계 자본 침투와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리나라 법체계 무력화 시도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대행의 대행'이라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지속되면서 한국 정부를 넘보는 시도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버리고 한국의 주권,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는 명확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