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초강경 난민 정책을 내세운 보수 및 우파 정당들 독일 정국 장악

극우 정당에 대한 협력 불가 금기 깨겠다는 메르츠 CDU 대표

초강경 난민 정책을 내세운 보수 및 우파 정당들 독일 정국 장악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교민주당(CDU) 및 기독교사회당(CSU) 총리 후보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CDU 본부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보수 및 우파 정당들이 초강경 난민정책을 내세우며 독일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 등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28.6%를 득표,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배 이상 격차로 제치고 정권을 탈환했다.

특히 난민 '재이주'를 구호까지 내세운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20.8%의 득표율로 원내 제2당을 차지하면서 극우의 약진을 과시했다. 2021년 9월 총선 때 10.4%보다 배로 늘어난 득표이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집권 SPD는 16.4%라는 사상 최저 득표율로 3위로 주저앉았다. 녹색당도 득표율이 전보다 3%p 감소한 11.6%로 나타났다.

사회주의 좌파당은 8.8%의 득표율로 선전했으나, 지난해 11월 숄츠의 연정을 떠난 자민당은 득표율이 4.3%에 그쳤다. 독일 선거법상 정당 득표율이 5%를 넘어야 원내 입성이 가능하다.

우파 정당들은 최근 잇따른 난민 흉악범죄와 이로 인한 반이민 정서의 확산에 기대 세를 불렸다.

극우 정당의 복권 현실화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 정당의 복권이란 변화가 독일 정국에 일어난 것이다.

중도보수 CDU·CSU 연합은 이례적으로 극우정당인 AfD와 큰 차이 없는 난민 정책을 정책으로 내세우며 시류에 편승했다.

제1당이 된 CDU·CSU 연합은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고 이민자를 국경에서 바로 돌려보내겠다고 공약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정치권 금기를 깨고 지난달 AfD의 찬성표를 합쳐 난민정책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강경책을 밀어붙였다. 극우 정당에 대한 '방화벽'을 깼다, 금기를 깼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보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앞만 본다"며 앞으로도 AfD와 난민정책에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AfD는 이번 총선에서 '재이주'를 공식 구호로 채택했다. 재이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극우 세력이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뜻으로 써온 용어다.

AfD는 국경 완전 폐쇄에 더해 망명 절차를 더 까다롭게 바꾸고 유럽연합(EU) 난민협정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난민 추방을 위한 구금시설을 설치하고 독일에서 추방된 자국민을 거부하는 나라에는 경제 제재와 함께 개발 지원을 끊겠다고 공약했다.

난민·이민정책 극우정당과 함께 가겠다는 CDU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의 설문에서 유권자들은 투표할 정당을 선택한 기준으로 국내 치안(18%)과 사회 보장(1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민(15%)과 경제성장(15%)이 뒤를 이었고 한동안 독일 정가의 핵심 의제였던 환경·기후 정책에 따라 표를 던졌다는 유권자는 13%로 쪼그라 들었다.

'외국인이 독일에 너무 많이 유입돼 걱정된다'고 답한 유권자는 전체의 55%에 달했다. 투표한 정당 별로는 극우 AfD 지지자의 89%가 이같이 답했다. 중도보수 CDU·CSU 연합 지지자 중에서는 70%였다.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최근 몇 달 동안 발생한 범죄로 인해 망명정책이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집권당 당수로서 총리 자리를 예약해 놓은 중도보수 연합의 메르츠 대표는 22일(현지시간) 마지막 선거 유세에서 "이민정책을 바꿀 준비가 안 된 정당과는 연정을 꾸리지 않겠다"고 말해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초강경 난민정책에 동의하는 정당은 AfD가 유일하고 상위법인 유럽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많다.

반이민 정서 고조 속에 머뭇거리다 대패한 집권당 등 진보 성향 정당들


반면, 집권 SPD와 연정 파트너 녹색당 등 진보 성향 정당들은 범죄를 저지른 난민을 신속히 추방하겠다면서도 이민정책 방향을 바꾸는 데는 머뭇거렸다. 만성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면 이민자에게 문을 닫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독일에서는 지난해부터 난민 강력범죄가 잇따라 반이민 정서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달 22일 아샤펜부르크의 공원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흉기를 휘둘러 2세 남아가 숨졌고 이달 13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집회 행렬에 차량을 몰고 돌진해 또 두살배기가 사망했다.
투표를 이틀 앞둔 21일에는 시리아 난민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스페인 관광객이 크게 다쳤다.

앞서 CDU는 앙겔라 메르켈 전 대표 겸 총리의 지휘 아래 2005~2021년 사이 16년 동안 집권했었다. 그러다 CDU·CSU 연합은 2021년 총선에서 패하고 SPD에게 정권을 넘겼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