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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원팀코리아로 관세 파고 넘어야

[강남시선] 원팀코리아로 관세 파고 넘어야
오승범 증권부장
우리나라가 관세를 처음 받은 건 1876년이다.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으로 일본과 무관세무역이 개시됐지만, 당시 조선에선 관세 개념이 전무했다. 일본 상품들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들어와 지역 상업 기반을 초토화하면서 뒤늦게 관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고육지책 끝에 수입물품과 물물교환하는 부산항 조선상인 대상으로 일본 대신 세금을 내도록 한 게 관세의 시초다. 이후 1882년에 조선과 미국의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수입물품 가격의 10%를 부과하면서 공식적인 관세무역이 시작됐다. 관세는 국경을 통과하는 수출입 품목에 부과되는 세금이지만, 일본처럼 국익을 위해 언제든지 통상정책의 무기로 활용된다. 상계관세, 상호관세, 보편관세, 반덤핑관세는 물론 외국 상품을 차별하는 비관세장벽 규제 등 자국 산업 보호와 패권경쟁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무쌍하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집착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취임 20여일 만에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엄포를 시작으로 중국 10% 추가, 콜롬비아는 25%를 적용했고 유럽연합(EU)에는 관세폭탄을 예고했다. 이달 들어선 부가가치세를 사실상 관세로 규정했다.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이어 자동차·반도체·의약품에도 고율관세 카드를 꺼내 드는 등 국가와 산업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정권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정책은 1기에 중국 견제에 힘을 실었다면 2기에는 우방을 비롯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슴없이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이 대규모 재정적자에도 안으로는 감세에 나서다 보니 밖에서 증세로 메꾸려는 형국이다. 한국도 예외 없이 번호표를 뽑아놓고 기다리고 있어 순서는 시간문제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노믹스는 '근린궁핍화정책' 양상을 띠고 있다. 외국 경제를 희생시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보호무역 정책으로 자칫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 1930년 대공황 초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산업 보호 등을 위해 관세를 큰 폭으로 인상했고, 이에 유럽을 포함한 무역국가들은 보복관세로 맞섰다. 그 여파로 미국의 무역규모는 60% 급감하는 등 국제 통상거래가 주저앉아 대공황의 수렁은 더 깊어졌다. 트럼프 1기 '탈중국 무역다변화'가 2기에는 극단적 자국우선주의로 관세 쇼크를 몰고오면서 주식시장의 긴장감도 역력하다. 기저에는 미중 관세전쟁 시기에 유탄을 맞은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3월 22일 중국산 수입품(500억달러) 관세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에 포문을 열었다. 이후 2019년 6월 29일 미중 도쿄G20회의에서 무역전쟁 휴전을 선언하기까지 1년3개월간 코스피지수는 2496에서 2129까지 밀려나 14.67%(367p) 급락했다. 증시를 짓누르는 관세 압박이 그만큼 컸던 셈이다. 주요 2개국(G2)의 무역전쟁에도 휘청거렸는데 직접적 타킷이 되면 한국 경제와 증시에 미칠 충격파는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다만 관세는 트럼프의 협상도구라는 시각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관세 2.5%보다 25%가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폭 올릴 테니 깎으려면 반대급부를 제시하라는 게 숨어 있는 행간의 의미로 읽힌다. 또한 미국이 전면적으로 관세정책을 밀어붙이는 건 부담이 만만치 않다. 중장기적으로 물가상승, 금리인상, 달러강세를 유발해 내수침체와 수출 내리막길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관세까지 가중되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고물가)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현지에서 속도조절론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에겐 이 같은 틈을 파고들 일사불란한 정·재계의 원팀코리아 총력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트럼프발 관세 파고를 넘지 못하면 코스피지수 3000선 탈환은 물론 정부의 올해 수출목표 7000억달러(약 999조원) 달성 역시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winwi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