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우 건설부동산부
지인 A씨는 부모님 카드를 쓰면서도 자기 돈은 아끼는 타입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절약을 외치면서도 부모님의 돈은 자기 돈처럼 호기롭게 쓴다. 국토교통부의 행태를 보면 A씨가 떠오른다. 개인에게는 갭투자를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공공기관에는 국민 세금이라는 '엄카(엄마 카드)'를 들려주며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LH가 매입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LH가 시세의 70% 이하로 매입하도록 해 세금낭비를 방지할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공기업에 '세금 갭투자'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고 주택시장 안정을 도모한다는 입장이지만, LH 내부에서는 재무부담 우려가 높다. 지난 2010년 대규모 미분양 매입 후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당시에도 유지·관리비 때문에 LH의 부담이 급증하기도 했다. 공기업이 부담을 떠안고 시장 개입에 나서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국 공기업을 앞세운 '엄카 정책'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LH는 2022년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해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됐다. 이후 2027년까지 부채비율을 208%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기준 총부채는 152조원을 넘어섰고 부채비율도 218.3%까지 상승했다. 수익성이 불투명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공기업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무리한 매입은 공공기관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투기 방지를 이유로 개인의 갭투자를 규제해왔다. 대출규제와 세금 부담을 강화해 다주택자의 투기적 매매를 막아왔다. 하지만 공공기관에는 '엄카'를 들려주고 갭투자를 종용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이 갭투자를 하면 투기이지만, 공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투자하면 괜찮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토부는 LH의 미분양 매입이 시장안정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 실패를 공기업이 떠안는 구조는 본래 LH의 역할과 거리가 있다. 미분양이 늘어나면 정부는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기업을 동원해 미분양을 해소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재정을 투입해 특정 시장을 떠받치는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미분양을 해소하는 단기적 처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개입을 지속하면 결국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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