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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영국남자와 트럼프

[강남시선] 영국남자와 트럼프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주식에 관심이 있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식품 유통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위는 어디일까. 언뜻 이마트, 롯데쇼핑, CJ 등이 떠오를 것이다. 답은 삼양식품이다.

64년의 삼양식품 역사에서 지난달 17일은 빼놓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이날 장중 주가가 92만원을 찍었다. 시가총액 6조8324억원으로 7조원 벽을 두드렸다. 삼양식품 주가가 처음 90만원선을 돌파한 것이다. 이후 6조원대에 안착한 모습이다.

라면 경쟁사인 농심과 오뚜기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절반밖에 안 된다. 아모레퍼시픽(6조9000억원), 두산에너빌리티(6조5000억원), 현대제철(6조2000억원) 등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삼양식품의 최근 10년간 주가 흐름을 보면 놀랍다. 5만원선을 밑돌던 주가는 2018년에야 10만원 벽을 넘었다. 2023년 9월에는 20만원 고지를 밟았다. 이후 주가는 말 그대로 수직상승 곡선을 그렸다. 작년 5월 40만원, 6월 60만원을 넘더니 지난달 80만원을 넘은 뒤로 내려올 조짐이 없다. K푸드가 해외에서 인기라지만 국내 식품사들 주가와는 전혀 다르다.

삼양식품 주가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삼양라면에 의존하던 삼양식품이 2012년 선보인 '불닭볶음면' 때문이다. 불닭볶음면은 출시 이후 국내에서 분 '맵요리' 열풍 속에 승승장구했다. 매운맛에 강한 한국인들도 소화하기 힘든 '페인포인트'가 되레 '바이럴 마케팅'이 됐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닭면 도전은 문화가 됐다.

불닭볶음면의 세계화 배경에는 SNS가 있다. 2014년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 운영자인 영국인 조쉬가 선물받은 불닭볶음면을 콘텐츠로 만든 게 화제가 됐다. 'FIRE NOODLE CHALLENGE'라는 제목처럼 영국인 친구들에게 매운 한국 라면을 먹여보고 반응을 관찰하는 내용이다. 순식간에 1000만 조회수를 넘기며 영국을 비롯, 유럽에서 불닭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유명 여성 래퍼 카디 비가 불닭면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 카디 비는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SNS 구독자 2억명을 보유한 '슈퍼 인플루언서'다. 그녀가 30분을 운전해 구한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맛있게 먹는 틱톡 영상은 한달 만에 30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불닭면의 SNS 기적은 멈추지 않았다. 그 유명한 미국 소녀의 '불닭볶음면 오열' 영상이다. 생일선물로 불닭면을 받은 소녀가 감격해 '폭풍눈물'을 흘린 영상은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1억 조회수를 넘으며 '밈'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SNS에 불닭면 먹방 영상은 100만건을 넘었다. 적어도 주요 국가에서 불닭면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없을 게다.

불닭볶음면의 성공신화는 SNS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매운걸 통증으로 여기는 미국과 유럽인들에게 불닭면이 '챌린지'를 넘어 식문화로 자리 잡은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삼양식품이 수천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썼더라도 이런 결실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김치, 라면에 이어 만두, 김밥 등 K푸드의 글로벌 영역은 엄청난 확장성을 보이고 있다. K식품사들이 과거에는 꿈도 못 꿨던 글로벌 공장들을 앞다퉈 세우고 있다. K방산과 함께 힘든 수출시장의 성장동력이 K푸드다. 그래서 우려도 크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의 입에서 언제 K푸드를 공격할지 모를 일이다. 젤렌스키와의 '모욕 외교'를 서슴지 않는 트럼프가 "K푸드 관세를 높이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럴 경우 우리가 꺼낼 카드는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자동차, 에너지 등 한국 수출을 짊어진 산업들조차 대미 외교력이 약한데 식품 분야는 논할 여지조차 없는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의 식품 분야 정책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민관 원팀을 꾸리는 준비가 시급하다. SNS와 기업들의 노력으로 일군 K푸드의 찬란한 미래가 허무하게 저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