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중독증 치료의 대가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중독증은 급성 아닌 만성질환
회복·재활 등 과정 데이터 쌓아
한국형 치료법 찾는 것이 중요
검거 인원수 10년새 3배 급증
보편적 건강문제로 인식 전환
지역사회 치료 시스템 갖추고
정부는 병원 지원예산 늘려야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박범준 기자
"한국형 마약류 중독 치료법 개발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용되는 마약류의 종류와 중독자의 연령, 약물대사의 유전적 특성 등이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형 마약류 중독증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근황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러면서 "마약류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지금, 이것의 치료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곧 국가경쟁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약류 중독증은 하나의 건강문제
이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독증 치료·연구 분야의 대가다. 지난해 3월까지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제15대 이사장까지 지낸 그는 현재 정신건강연구개발사업단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분야 연구협의체장을 맡고 있다.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분야 연구'는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연구개발사업단이 지난해부터 6년 동안 진행하는 연구개발(R&D) 사업이다. 한국형 마약류 중독증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이 사업을 위해 마약류 중독자들을 추적 관찰해 기록하는 연구를 한다. 그는 "중독증도 사람이 경험하는 질환이기에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질병에 걸리고 어떻게 악화되며 어떻게 치료되고 어떻게 회복이 되고 어떻게 재발하는지 등을 관찰해 데이터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독증이 급성기 질환이면 몇 차례의 검사만 하면 되지만, 이건은 만성질환이므로 최소 3~4년을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약류 중독증에 대한 접근법이 더 이상 사법모델에 머무르기보다는 공중보건모델으로 전환돼 마약류 중독증을 보편적 건강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대 중반까지 한 해 검거 인원수가 1만명 이하였던 마약류 사범 수는 근 10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을 보면 마약류 중독증을 사법모델로 바라보는 접근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마약류 중독증을 공중보건모델로 접근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호주는 2010년대 초반 마약류 중독증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중독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구체적으로 공공에서 약물검사를 지원하거나 중독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등이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마약류 중독증과 같은 정신행동질환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했다. "정신행동질환은 개인 의지와 결부시켜 치료에 있어서 개인의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다. 쉽게 말해 중독자가 좋아서 한 것 아니냐는 말"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마약류 중독증 치료의 핵심은 편견을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마약중독자는 사회적으로 범죄자로 인식되며, 이로 인해 치료와 재활의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는 "중독증의 경우 보건, 심리, 간호, 사회복지, 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질병이자 사회적 산물"이라고 밝혔다.
■치료 중심 체계 위한 기본법 절실
그는 마약류 중독증에 대한 접근이 공중보건모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중독치료회복지원법과 같은 중독성 질환자의 문제를 건강의 문제로서 지원할 수 있는 기본법이 마련돼야 한다. 그는 "기본법 설정되어야 한다. 치료정책, 아니 하다 못해 예방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취약계층, 단계별 전개 과정, 연령별 반응 등 질병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현 시스템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힘들다"며 "문제가 심각하고 비판이 거셀수록 원칙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법률제도와 같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보건복지부 주도하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확충하고, 의료기관에서의 치료 지원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새로운 치료체계를 만들 것이 아니라 기존 치료체계를 이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예컨대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에서 마약류 중독자도 치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이와 함께 치료시스템에 지역촉진접근적 요소를 만들어 가족과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다양한 복지휴먼시스템을 환자에게 서비스로 제공해야 중독증 치료에 효과적이다"라고 부연했다.
■예방교육도 같이 이뤄져야
그는 마약류 중독증 예방을 위해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재의 예방교육은 "마약류를 하지 말라"라는 금지 중심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지만, 이는 오히려 중독자들을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에 연령별·상황별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 대상 예방교육에서는 마약의 위험성뿐 아니라 중독에 빠졌을 때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이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문제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마약류 중독증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선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는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하는 것은 상당 부분 건강보험수가와 관련 있다"며 "의료용 마약류 상담에도 건강보험수가를 적용해 의료진이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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