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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단통법 지킨 이통사에 중복제재 없어야

[강남시선] 단통법 지킨 이통사에 중복제재 없어야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이동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을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심의 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업계에선 이통 3사를 합해 최대 5조50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이통 3사가 서로 판매장려금 지급 수준을 조율했다고 보고 있다. 가입자 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고 소비자에게 돈을 덜 썼다는 얘기다.

이번 사안의 중심에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있다. 지난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은 이통사들의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불법 보조금 지급을 막아 누구나 비슷한 가격에 단말기를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히 이용자 간 차별적인 지원금 지급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즉 통신사가 특정 고객에게만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를 방지하고, 공시된 지원금을 통해 누구나 동일한 조건에서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단통법의 뼈대다.

법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행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법 준수자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단통법은 시행 단계부터 논란의 여지가 더 컸다. 법의 최종 목적이 소비자 이익인데, 이를 이통사 간 과도한 경쟁을 막는 방법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법 시행 후 방송통신위원회가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을 낸 것도 그래서다. 당시 방통위는 과도한 경쟁을 막고 시장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장려금을 30만원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통사들을 행정지도했다. 이통사들이 이를 따르지 않자 방통위는 철퇴를 때렸다. 불법 보조금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이통 3사에 50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것이다. 이통사 입장에선 행정지도를 법 시행에 준하는 형태로 인식했다.

이통사들이 억울해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단통법 주무기관인 방통위의 지도를 따르지 않아도 제재를 받고, 이번에는 잘 준수했다는 이유로도 제재를 받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이 점을 지적했다. 최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방통위가 이미 불법 장려금 경쟁과 관련해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방통위가 이미 제재를 가한 사안을 공정위가 다시 들여다보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규제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과징금을 받는 경우 이통사들은 대외 신인도 타격도 우려하고 있다. 법규 준수 여부를 철저히 따지는 해외 업체들과 제휴 과정이 원활치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이통사 임원은 "통상적으로 제재가 진행되는 업체는 국제무대에 나갔을 때 글로벌 업체들이 걱정하며 안부를 묻는다"면서 "우리를 배려하는 발언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외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는 의미여서 파트너사들을 만날 때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통사들은 앞으로도 막대한 지출이 예상돼 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투자가 시급하다. 해외 빅테크 등이 선두로 있는 AI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체 개발한 AI 에이전트를 고도화할 우수인력 수급이 필수적이다. AI 에이전트의 성능을 담보하려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대규모 AI데이터센터(AIDC) 건설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자본, 인력, 대외 이미지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올해에만 최소 수조원의 자본금 투입이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수년간 3G~5G 신규 주파수 할당과 재할당에 돈을 써야 한다. 이통사들은 올해를 AI서비스 사업자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꼽고 있다.
투자와 속도가 생명이다. 이 과정에서 중복제재로 발목을 잡힌다면 그 억울함은 어디서 풀어야 할까. 공정위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5일 국회 과기정통위 현안질의에서 "단통법을 올 7월 폐지하게 됐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이전에는) 법을 준수해왔던 것"이라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취했던 통신사들의 행위가 과도하게 단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ksh@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