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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스님에게 천왕이 꿈에서 OOOOO을 알려주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스님에게 천왕이 꿈에서 OOOOO을 알려주었다
먼 옛날 지공 스님이 불경을 암송하기 어려워하면서 불안초조와 함께 불면증, 건망증에 시달리자 천왕이 꿈속에서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 처방을 알려 주었다(Chat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당나라 때 종남산의 어느 사찰에서 지공(誌公) 스님이 수행을 하고 있었다. 지공 스님은 계율을 전문적으로 지키고 잘 가르쳐서 선율사(宣律師)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스님들에게 계율을 강독하기 위해서 수많은 경전을 읽고 암송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공 스님은 경전을 읽고 암송하고자 했지만 이상하게도 기억력이 자꾸 흐려지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불경을 아무리 외우려 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경을 외우는 도중 이전 장들을 들춰보면 마치 처음 보는 내용처럼 낯설었다.

다른 스님들을 보면 더 불안해졌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집중해서 불경을 암송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공 스님은 다른 스님들은 경전을 잘 암송하는데, 혹시 자신만 이렇게 외우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커지면서 불안해졌다.

결국 그러다 보니 마음이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림이 심해 깊은 명상을 할 수도 없었다.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면증에까지 시달렸다.

지공 스님은 자신이 수행에 부족한 것인지 고민하며 밤낮으로 기도를 올렸다. ‘이것은 나에게 불심(佛心)이 부족한 것이다. 번뇌가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니 이 번뇌를 떨치면 불안감과 불면증이 사라지고 암송도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지공 스님은 잡념을 떨치고자 명상을 했고,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음식도 소식했다. 잡념이 생기면 일부러 행자승 대신 땔감을 하거나 물을 길어오고 장작을 팼다. 그러나 암송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다시 잡념이 떠오르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렵게 선잠이 들었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머리에 광채를 두른 한 신령스러운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등천왕(鄧天王)이었다. 등천왕은 사대천왕 중 북쪽을 수호하는 신으로, 바로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지공 스님은 꿈속에서조차 다문천왕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다문천왕께서 어인 일로 납시었습니까?” 그러자 다문천왕은 “네가 잠시도 쉬지 않고 불경을 외우고 수행을 하는데, 번뇌하기에 그 노력이 가상해서 왔다.”라고 했다.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부와 전쟁을 관장하지만, 사대천왕 중 가장 지혜로운 신이었다. 불교에서 다문천왕은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어 불법에 대한 이해가 깊고, 뛰어난 지혜를 가진 천왕이었다. 다문(多聞)은 ‘많이 듣고 배운다’는 뜻으로 지혜와 학문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공 스님은 다문천왕에게 “천왕님,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가 불심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다문천왕은 지공 스님에게 “그대의 불심은 충분하다. 다만 그대의 심신(心神)이 허하고, 정혈(精血)이 부족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약이 필요하도다. 생지황, 맥문동, 천문동, 백자인, 원지, 당귀, 인삼, 단삼, 오미자, 복령, 주사를 함께 써라.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면증도 없어지며 건망증도 사라질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스님은 꿈에서 깨어난 후, 다문천왕이 알려준 대로 이 약재들을 모아 약을 만들어 복용했다. 며칠이 지나자 가슴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졌으며, 불면증도 점차 나아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불경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주위에서는 지공 스님이 불경을 읽으면 하룻밤에 천자를 외울 수 있다고 소문이 났다. 많은 스님들이 그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지공 스님은 “제가 게으름 없이 정진하였더니, 천왕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에 그동안의 인연을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스님들도 지공 스님이 알려준 대로 처방을 복용했더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면서 불안과 초조가 사라지고, 건망증이 없어졌으며, 불면증 또한 걱정되지 않았다. 사실 다른 스님들도 말만 안 했지 모두 불경을 암송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스님들이 “그 처방 이름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받은 처방이라 이름이 없었다. 지공 스님은 고민 끝에 ‘이 처방은 꿈속에서 천왕(天王)이 알려주셨고, 심허(心虛)를 보(補)하기 위한 처방이기에 천왕보심단이라고 해야겠다.’라고 해서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천왕보심단은 원나라 때 위역림이 저술한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 처음 나온다. <세의득효방>은 위역림이 가문의 5대에 걸친 임상 경험을 집대성하여 1328년부터 1337년 사이에 편찬한 의학서로, 다양한 질병에 대한 효과적인 처방을 수록하여 후대 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천왕보심단의 원방은 후세에 이르러 조금씩 변방되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나오는 천왕보심단의 처방을 보면 ‘생건지황 술로 씻은 것 4냥, 황련 술에 축여 볶은 것 2냥, 석창포 1냥, 인삼, 당귀 술로 씻은 것, 오미자, 천문동, 맥문동, 백자인, 산조인 볶은 것, 현삼, 백복신, 단삼, 길경, 원지 각 5돈. 이 약들을 가루 내어 꿀로 반죽하여 오자대로 환을 만들고 주사로 겉을 입힌다. 잘 때 등심과 죽엽을 달인 물로 30~50알씩 삼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요즘은 주사에 수은이 함유되어 있어서 수은의 독성을 제거했다는 수비주사(水飛朱砂)라도 사용하지 않는다.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은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과 효능에서 차이가 있다. 천왕보심단은 심혈(心血)과 음허(陰虛)를 보충하여 신경 안정, 불면증, 건망증에 사용한다.

반면 우황청심환은 청열(淸熱) 작용이 강하고 심화(心火)를 제거하면서 중풍, 고혈압 등에 사용한다. 천왕보심단은 허증약(虛症藥)으로 보혈(補血), 안신(安神) 작용이 강하다면, 우황청심환은 실증약(實症藥)으로 청열(淸熱), 진정(眞靜) 작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천왕보심단은 보음제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설사나 소화불량, 식욕부진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위장이 약한 소음인들에게는 소화불량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반면에 열이 많은 소양인이나 태음인 등에게 적합하다. 만약 소음인이 천왕보심단을 소량이라도 복용하고자 한다면 생강차나 대추차로 복용하면 좋다.

* 제목의 ○○○○○은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방집해> 天王補心丹. 補心. 終南, 宣律師, 課誦, 勞心, 夢天王授以此方, 故名. 治思慮過度, 心血不足, 怔忡健忘, 心口多汗, 大便或秘或溏, 口舌生瘡等證. (천왕보심단. 심을 보한다. 종남의 선율사가 불경을 암송하는데 노심병에 걸려 꿈에 천왕이 이 처방을 알려준 고로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다. 사려의 과다로 심혈이 부족하여 정충, 건망하고 겨드랑이 다한증, 대변은 혹 변비거나 혹 무르기도 하고 구설에 창이 생기는 등의 증을 치료한다.)
<경악전서> 天王補心丹. 此方之傳, 未考所自, 道藏偈云: “昔誌公和尙, 日夜講經, 鄧天王, 憫其勞者也, 錫之此方, 因以名焉”.(이 처방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도장경에서는 “옛날에 지공 화상이 밤낮으로 책을 읽었는데, 등천왕이 그 노고를 가엽게 여겨서 이 처방을 하사했기 때문에 천왕보심단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였다.
)
<동의보감> 天王補心丹. 寧心保神, 令人不忘, 除怔忡, 定驚悸, 養育心神. 生乾地黃(酒洗) 四兩, 黃連(酒炒) 二兩, 石菖蒲 一兩, 人參, 當歸(酒洗), 五味子, 天門冬, 麥門冬, 柏子仁, 酸棗仁(炒), 玄參, 白茯神, 丹參, 䓀莄, 遠志 各五錢. 右爲末, 蜜丸梧子大, 朱砂爲衣, 臨臥, 以燈心, 竹葉煎湯, 呑下三五十丸. (심을 편안하게 하고 신을 보전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며 정충과 경계를 없애고 심신을 기른다. 생건지황 술로 씻은 것 4냥, 황련 술에 축여 볶은 것 2냥, 석창포 1냥, 인삼, 당귀 술로 씻은 것, 오미자, 천문동, 맥문동, 백자인, 산조인 볶은 것, 현삼, 백복신, 단삼, 길경, 원지 각 5돈. 이 약들을 가루내어 꿀로 반죽하여 오자대로 환을 만들고 주사로 겉을 입힌다. 잘 때 등심과 죽엽을 달인 물로 30~50알씩 삼킨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