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람 정치부 기자
정치권에 입문한 초선 의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대중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언론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거나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도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극심한 불안증세에 시달린다. 주목도가 낮으면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최근 사석에서 한 여당 초선의원이 한 말이다. 이 의원은 특정 전문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과 내공을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문분야에서 활약을 해도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살벌하고 냉엄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정치는 증오의 조직화'라는 말이 있다.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의 발언을 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뱉은 언어가 증오의 조직화를 이루지 못해서다. 여권의 이재명 때리기와 헌법재판소 공략은 반(反)이재명 세력과 강성 보수층의 분노를 규합하는 데 효율적이다. 이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각자 강성 지지층이 분출하고 있는 들끓는 분노에 편승해 주목을 받는 것은 비교적 쉽다. 나치 정권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는 "선동은 단 한 줄이면 충분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만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만큼 '선동정치'가 주는 파급력은 실로 엄청나다. 정치인들의 폭력적 언어는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거치며 극단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은 지난 1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공수처·선관위·헌재를) 모두 때려 부숴야 한다. 쳐부수자"고 했다. 하지만 서부지법 난동을 겪은 상황에서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 헌법적 독립기관인 국회의원이 할 말은 아니다. 당 지도부가 이를 두둔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2010년대 초반 스페인에선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일어났다.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극단적 정치언어가 난무할수록 증오정치를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퇴보냐, 전진이냐를 놓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폭력적 언어를 고리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증오와 반목이라는 파도에 올라타 주목받고 '절반의 지지'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표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복합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정치를 할 것인가. 분명한 건 전자는 진정한 의미의 실용정치와 합리적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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