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 건설부동산부장
"부동산의 어려운 기업들이 지방에 주로 많이 있지만 파산할 기업은 파산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한 이 발언이 건설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장기간의 부동산경기 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이 발언은 건설사들이 타깃이었다. 입장은 확고했다. 파산할 곳은 파산하고, 파산하지 않을 기업은 보유한 땅을 싼 가격에 팔아 다른 사람이 사업을 하도록 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기업을 살릴 것이 아니라 산업이 안정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발언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현재 건설사들의 위기가 단순히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를 보면 대부분이 낯이 익은 곳들이다.
새해 벽두부터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신동아건설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였던 63빌딩 시공사다. 아파트 브랜드 '파밀리에'로 소비자에게 익숙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58위에 올랐던 중견 건설사였다. 뒤를 이어 경남 2위 건설사인 대저건설이 법정관리를 택했다. 시공능력평가 103위 건설사로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 마곡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공동 시공사로 참여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지만 경기침체와 공사비 급등에 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달에는 대한민국 건설업 면허 1호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948년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서울지하철 1호선,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활주로 공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인프라사업에 참여했었다. 지난 6일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시공능력평가 71위인 이 중견 건설사는 앞으로 제출할 회생계획안의 내용에 따라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지난달 24일에는 시공능력평가 116위 안강건설이 법정관리 신청 건설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사흘 후 27일에는 '엘크루' 브랜드로 주택사업을 했던 대우조선해양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또다시 충격을 안겼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지 2년 만이다. 인수자로 나섰던 부동산 개발업체 스카이아이앤디가 경기침체 속에 자금 마련에 실패한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83위였다.
지난 4일에는 '벽산블루밍'으로 유명한 벽산엔지니어링까지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 시공능력평가 180위의 건설사로 재무악화 속에 부채비율이 400%를 훌쩍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니 위기는 단순히 지방·중소건설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벌써부터 시공능력평가 20위 이내의 건설사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건설업계에 '4월 위기설'이 퍼지고 있을 정도다.
삼부토건의 법정관리를 승인한 재판부는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공사대금 및 시행사 대여금 미회수 급증 등으로 자금 유동성이 악화됐다"고 했다. 지목된 이유 모두 단순히 삼부토건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건설업계 전반이 겪고 있는 위험요인들이다. 법원마저 개별 기업이 아니라 건설업의 위기로 평가했다는 얘기다.
사실 건설업체는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올 들어 지난 7일까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사만 115곳에 달하고, 전문건설업체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684곳으로 늘어난다. 202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같은 기간 폐업한 종합건설사 수가 60곳 미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이 총재의 말처럼 좀비기업을 살리는 것은 반대다.
다만 건설업이 안정되도록 하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2·19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이 부족하다며 후속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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