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도 87위에서 13단계나 밀려나
노동 유연성 확보 위한 정책 전환을
미국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 한국 항목별 점수(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사진=뉴스1
한국 노동시장의 자유 수준이 100위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를 인용한 자료에 나온 결과다. 18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12개 평가항목 가운데 노동시장의 경제 자유 수준이 전년도 87위에서 13단계나 떨어져 100위를 기록한 것이다.
조사항목 가운데 노동시장은 근로시간, 채용, 해고 등 규제가 경직될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규제가 심각할 정도에 이른 사실이 객관적인 조사로 확인된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데 노동시장 경쟁력 면에서는 100권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까지 국내 노동정책 현안들을 되짚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에는 노란봉투법이 거대 야당 주도로 추진된 바 있다. 최근에는 주52시간 예외를 허용하는 반도체법이 야당의 반발로 헛바퀴를 돌고 있다. 걸핏하면 노동조합이 정치적 선동선전과 이념 갈라치기에 나서는 문제까지 벌어지는 게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다.
노동시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 우선, 한국 경제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으나 노동 경직성으로 생산 효율성이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노동 유연성을 발휘해 생산 효율성을 높여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기존 제조업과 서비스 시장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노동에 관한 기존 관점으로는 첨단기술 도입에 따른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게 됐다.
양대 파고를 극복하려면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노동시장이 지금처럼 경직돼 있다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국에 이미 뒤지고 있는 와중에 동남아시아와 멕시코, 브라질 등 저임금 노동력으로 글로벌 시장 파이를 키우는 경쟁국들을 이길 수 없다.
결국 노동시장 대전환의 핵심 키워드는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연공서열을 혁파하고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근로자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다. 근로시간 역시 탄력적으로 도입해 디지털 기술혁신 등 산업구조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국정공백이 장기화되면서 노동개혁을 비롯한 정책 논의가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정부의 정책동력이 떨어진 마당에는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하나 관심이 부족하다.
경직된 노동구조를 혁파하고 AI 시대 흐름에 맞게 고용과 노동시장을 재편할 골든타임을 맞고 있지만, 대응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얻기 힘들 수 있다. 국회는 미래 첨단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입법에라도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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