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 경제부 부국장 세종본부장
상속세 개편론이 정치권에서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법개정 때 최고세율 인하, 자녀공제 확대 등 정부의 상속세 개정안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난데없다. 불과 3개월 만에 여야는 현재 30억원인 '배우자공제 한도 폐지'라는 공감대까지 이뤘다. 정부도 가세했다. 1950년 상속세법 제정 이후 75년 만에 유산취득과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치는 눈치가 빠르다. 표심을 끌어오기엔 상속세 완화만 한 게 없다. "부자감세냐, 아니냐"를 놓고 건건이 맞섰지만 탄핵정국 속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자 여야 모두 돌변했다. '초부자감세 불가' 입장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변신은 더 드라마틱하다. 문재인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정책 실패가 지난 대선 승패를 가른 원인 중 하나라는 인식이 태도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 과세대상자와 상속세 완화 수혜자가 겹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표차는 24만여표에 불과했다.
2023년 기준 상속세 과세대상 피상속인(사망자)은 2만명가량이다. 사망자의 5.5% 정도다. 조부모 상속은 부모를 거쳐 손자녀까지 장기적으론 혜택이 돌아간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이 10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똘똘한 한 채'를 가진 가구의 세금 부담을 덜어줘 지지를 끌어낸다는 게 상속세 완화를 서두르는 정치권 속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 기각을 놓고 여론 추이가 팽팽한 가운데 민주당은 정치공학적으로 조기 대선 현실화에 대비한 적절한 선택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으로서도 지지층인 '집토끼'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다.
정치권 움직임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현행 상속세는 과세형평성, 이중과세 등 논란 소지가 여럿 있다. 배우자공제만 봐도 그렇다. 이혼하며 재산을 분할할 땐 경제공동체로 봐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고 배우자가 상속할 땐 공제한도를 넘어서면 세금을 물린다. 과세여건도 급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대 저성장'도 현실화됐다. 성장이 더딘 만큼 세대 간 원활한 부의 이전과 소비 확대가 시급하다. 상속세제 개편은 한국 사회 대전환기에 필요한 조세정책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유산취득세 전환방침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산취득세는 상속받은 만큼 과세한다. 세율은 낮아진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과유불급을 경계한다. 정치적 목적이 과도하게 개입됐을 땐 부작용이 생긴다. 낡은 세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하는 방향이 아니라 선거전략에 도움이 되는지를 중심으로 흘러갈 여지가 상당해서다. 상속세 '공포'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피상속인의 5% 정도가 과세대상이지만 "자신도 포함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들을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이 예상하는 상속세 납부 피상속인 비율은 평균 35.2%였다. 걱정 안 해도 될 사람이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선거용' 상속세 완화의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 세수감소에 대한 대안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여야는 물론이고 유산취득세를 내놓은 정부도 언급하지 않았다. 감세는 확실한데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인구충격에 따른 복지 확대 재원 충당방안은 없다. 표 얻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외면해서다. 상속세 걱정은 서울 중산층 이상 가구만 하는 게 아니다. 고율의 상속세 부담에 경영권 유지가 힘들어 가업승계를 못하는 기업 사례는 숱하다. 여야 합의로 최고세율 인하가 어렵다면 주식 등에 대해선 가업승계 땐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고 추후 처분 때 매기는 자본이득세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조세정책의 틀은 정부에서 결정하지만 법률 개정 권한은 국회에 있다.
헌법이 국민의 '납세의무'와 '조세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있어서다. 세금과 정치는 불가분이다. 다만 지나친 '상속세 정치공학'은 나무만 보다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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