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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빅테크의 한국행, 기회로 만들려면

[테헤란로] 빅테크의 한국행, 기회로 만들려면
조윤주 정보미디어부 차장

최근 글로벌 빅테크의 발걸음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 지난 2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 방한에 이어 앤스로픽의 마이크 크리거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아마존웹서비스(AWS) 행사와 콕스웨이브의 '코리아 빌더 서밋'을 통해 한국 개발자들과 교류했다. 오는 26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사티아 나델라가 'AI 투어 인 서울'에서 키노트를 맡는다. 글로벌 AI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연이어 한국을 찾는 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이 이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인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 빠른 기술 수용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경쟁력, 그리고 AI 활용도가 높은 국내 기업 생태계까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을 단순한 기회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한국에서 주목하는 것은 협력뿐만 아니라 규제환경이다.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새로운 법과 규제가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문제는 그 방향성과 강도다.

구글 아시아태평양 AI·신흥기술정책 담당 유니스 황은 최근 한국의 AI 기본법을 두고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이지만 기술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AI의 윤리적 위험을 관리하는 것과 AI 모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법적 모호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혁신을 지속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 AI 산업의 방향성은 단순한 규제 완화나 빅테크와의 협력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AI 혁신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내 기업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과 정책이 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점이다. AI의 가능성과 위험을 정밀하게 구분하는 정책적 정교함이 없다면 한국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해외 기술 의존도를 더 키우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규제완화가 아니다.
AI 산업을 성장시키되, 혁신과 안전을 균형 있게 조율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빅테크의 한국행은 단순히 시장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적 가능성과 규제 리스크를 동시에 평가하는 신호임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협력 이상의, 장기적인 AI 전략과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결단이다.

yjjo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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