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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걸'

[기업과 옛 신문광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걸'

삼부토건이란 기업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1948년 창립해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지하철 1호선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 면허 1호 업체다.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였던 르네상스 호텔을 지어 소유하기도 했던 잘나가는 업체였다.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이었던 이 호텔은 건축가 김수근의 유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5년 병상에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삼부토건은 아파트 건설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인 632가구의 마포아파트를 현대건설과 함께 시공한 업체가 삼부토건이다. 1962년 완공된 이 아파트는 영화 배경으로도 자주 나왔다. 1997년 재건축되어 마포삼성아파트가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초창기 여의도 아파트 건설도 삼부토건이 주도했다. 시범아파트와 삼부아파트다. 서울시는 1968년 공항과 말 목장이 있던 여의도에 홍수를 막는 윤중제를 건설하고 토지 분양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땅을 사려 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여의도는 교통이 불편한 한강의 하중도였을 뿐이다. 서울시는 직접 아파트를 분양해 인구유입을 추진했다. 24개동 1584가구 규모로 1971년 준공된 시범아파트다(조선일보 1970년 8월 20일자·사진). 여의도에 들어선 최초의 건물이자 한국 최초의 현대식 고층 아파트이기도 하다. 황량한 여의도에 시범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던 때가 있었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에 준공됐다. 시범아파트는 입지 좋은 곳에 최초로 지은 아파트라는 의미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여론이 들끓던 때라 시범아파트는 매우 튼튼히 지어졌다. 기둥식 구조로 층간소음도 적다고 한다. 냉온수 급수와 스팀난방은 당시로서는 초현대식 시설이었다. 마포아파트는 연탄난방을 해 연탄가스 질식 사고가 더러 발생했다. 시범아파트는 12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최초의 아파트이기도 하다. 마포아파트는 6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리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포아파트는 애초 10층으로 계획되어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무슨 중앙난방이냐, 마실 물도 귀한데 무슨 수세식이냐"는 비판에 설계를 변경했다고 한다.

입주 초기에 시범아파트에는 호텔이나 백화점에나 있던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다. 전체 98명이 제복을 입고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며 주민들의 출입을 도왔다. 그러나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 인원을 줄여 낮에만 배치했다. 2층짜리 상가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일부러 멀리서 상가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범아파트는 주방 옆에 1.5평짜리 '가정부실'이 있었다. 당시 부유한 가정에서는 '식모'나 '가정부'라고 부르던 '가사관리인'을 두었는데 설계에 반영한 것이다. 광고에 나온 설계도를 보면 30평형은 '가정부실', 40평형은 '가사실'로 달리 쓰여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나 이촌동 한강맨션,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등에도 이 작은 방이 있었다. '식모방'이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복도에 베란다가 있는 것도 시범아파트의 특징이다. 바로 장독을 위한 공간이다. 장독은 주부들이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이어서 아파트 생활에서 가장 큰 고민이 장독 둘 곳이었다. 서울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68년부터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펼쳤다.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아파트에 공급할 목적으로 된장·간장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서울시가 인천 부평에 장유공장을 지었다는 기사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빨래 널 공간이었다. 발코니에 널어둔 빨래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아래층과 다투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삼부토건은 이런 경험을 살려 여의도 삼부아파트를 지어 1976년 분양했다. 단지가 널찍하고 지금 보아도 외관이 멀쩡할 정도로 잘 지었다는 평가다. 시범아파트와 삼부아파트는 현재 동시에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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