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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사기(史記)>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고사성어가 나오는데,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Chat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진나라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 지역을 순행 중이었다. 그런데 진시황은 순행 중 병이 악화되어 붕어(崩御)하고야 말았다. 진시황은 죽기 직전, 장남 부소(扶蘇)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진시황의 수행단에는 환관 조고(趙高)가 함께 했는데, 조고는 진시황의 막강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조고는 비록 환관 신분이었지만 법률과 형벌에 능통한 율가(律家) 출신이었으며,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조고는 부소가 즉위할 경우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재상 이사(李斯)와 공모하여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했다.
유서는 다음과 같이 "부소는 죄를 지었으니 자결하라. 대신 호해(胡亥)가 황위를 잇는다."는 식으로 조작이 되었다.
부소는 아버지의 뜻이라 믿었던 거짓 유서를 끝내 의심하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렇게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가 황위에 올라 진나라의 두 번째 황제, 이세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호해는 즉위 당시 겨우 19세였다. 경험도, 정치적 기반도 부족한 그에게 조고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조고는 호해의 즉위 직후 승상의 자리에 오르며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세를 신하들이 인정하고 따를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고는 한 가지 시험을 계획했다.
어느 날, 그는 사슴 한 마리를 황제에게 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 말은 천리마 중의 천리마이옵니다." 그러자 황제가 웃으며 말하길 "승상, 농을 즐기시는군요. 이것은 분명 사슴이 아니오?"라고 했다. 그러자 조고는 미소 지으며 신하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것이 말이오, 사슴이오?"라고 물었다.
신하들은 난감해하며 눈치를 봤다. 조고의 눈치를 살핀 일부는 "말입니다."라 답하는 이들도 있었고, 용기 있는 몇몇은 "사슴이 아니옵니까?"라고 직언했다.
조고는 사슴이라 말한 자들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이후 갖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그들을 추방하거나 숙청해 버렸다.
그 후 조고는 더욱 대담해졌다. 결국 그는 호해마저 자결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자 하늘이 자신을 꾸짖는 줄 알고 겁을 먹고 황위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이후에도 그는 대신 황족 자영에게 양위를 시도했으나, 자영의 부하인 한담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 일로 진나라의 관료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추방당했던 충신들이 항우 진영에 합류하면서 진나라는 빠르게 무너졌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지록위마(指鹿 馬)', 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이다.
겉으로는 사소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억누르고 반대자들을 제거하며 권위를 장악하는 잔혹한 정치적 수사와 관련된 한자성어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면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지록위마 이야기는 후세에도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말할 때 인용되기도 했다.
옛날 어느 날, 한 현령(縣令)이 새롭게 부임했다. 새로 부임한 현령은 토지 문답문서를 들고서 아전(衙前)에게 "이 논은 지금 어느 마을 땅이냐? 그리고 이 논은 지금 누구 땅이냐?"라며 토지의 구획과 소속을 정확히 따지며 물었다.
당시 아전은 탐욕스러웠다. 그래서 그 땅들을 남몰래 자신의 소유로 하고자 계략을 세우고 있었다.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은 이번에도 새로 부임한 현령에게도 거짓보고를 했다. 그러나 현령은 믿지 않았다. 현령은 사실 그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미 전답의 상황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자 아전은 중간 관리자인 향리(鄕吏) 또는 좌수(座首), 별감(別監) 등에게 "내 말이 맞는가? 틀린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일부는 아전의 눈치를 보더니 '맞다'라고 하기도 하고, 일부는 용기를 내서 '틀리다'고 했다.
현령은 "자네들의 모습은 마치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는 것과 같고[지록위마(指鹿爲馬)], 쥐를 가리켜 박옥(璞玉, 거칠지만 귀한 옥)이라 하는 것과 같고[환서위박(喚鼠 璞)], 6리를 600리라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나무랐다. 아전과 함께 아전의 말이 맞다고 했던 중간 관리들은 깜짝 놀랐다.
현령은 아전에게 "아무리 뛰어난 관리라도 아래에서 이렇게 거짓 보고를 한다면 한나라 때 청백리로 알려진 공거( 遂)와 황패(黃 )일지라도 어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파면을 시켰다. 물론 아전의 말이 맞다고 했던 자들도 벌을 받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단순한 고사가 아니다. 진실을 왜곡되고 거짓이 일상화될 때 한 나라의 통치 체계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경고다.
지도자가 거짓을 말하고 국민이 그것에 침묵할 때 사회는 병들기 시작한다. 권력을 쥔 지도자는 진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하며, 국민은 두려움에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참을 말해야 한다.
이제는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지도자는 없어야 하며, 모두가 사슴을 사슴이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할 때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거짓이 없는 정직한 통합된 사회가 될 수 있다.
* 제목의 ○은 '말'입니다.
오늘의 본초강목 이야기 출처
<사기> 秦始皇本紀. 八月己亥, 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 曰:馬也.」二世笑曰:丞相誤邪? 謂鹿爲馬.」問左右, 左右或黙, 或言馬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진시황본기. 8월 기해일, 조고는 난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듣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먼저 시험을 해보려고 사슴 한 마리를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입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니”라고 했다.
좌우에 물으니 입을 다문 자도 있고, 말이라며 조고에게 아부하는 자도 있었으며, 사슴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몰래 죄를 씌워 모함했다. 이후로 신하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했다.)
<
경세유표> 縣令執此文. 以問之曰. 玄字畓何㽝也. 黃字畓何㽝也. 於是奸吏奸民. 指鹿爲馬. 喚鼠爲璞. 告六里爲六百里. 雖有龔. 黃之能. 何以辨矣. 魚鱗圖者. 田形之正者斜者尖者鈍者小者大者長者短者. 瞭然在目. 毫髮不可欺罔. 雖有甚愚之縣令. 不受欺也. 不必井田九一. 不可無此圖. 抑亦結負以解田者. 尤宜亟作此圖. 庶乎奸弊少戢也. 魚鱗圖. 宜有模範. 以示諸縣. 顧紙面窄小. 但取一區. 作圖如左. (현령은 문서를 잡고서 묻기를 “현자 답은 어느 배미이고 황자 답은 어느 배미인가?”라고 하면 이에 간활한 아전은,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 하고 “쥐를 일러서 박옥이라” 하여 6리를 600리라고 보고하니 비록 공황 같은 재능이 있다 한들 무엇으로써 분변하겠는가?)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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