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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강도 관세에 미 기업들 속앓이…”분노 우려해 말도 못 꺼내”

[파이낸셜뉴스]
트럼프 고강도 관세에 미 기업들 속앓이…”분노 우려해 말도 못 꺼내”
자신이 발표한 상호관세로 뉴욕 증시 시가총액이 이틀 동안 6조6000억달러가 날아간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골프를 마친 뒤 마러라고 자책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 기업들은 트럼프 상호관세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트럼프의 위세에 밀려 대놓고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대적인 관세 정책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오후 발표한 상호관세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산정되면서 이전에 세워뒀던 대비책이 휴지 조각이 됐고, 앞으로 심각한 경영 타격이 예상되지만 대 놓고 반발도 하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 기업들이 자칫 트럼프의 분노를 사 대대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로펌 폴와이스 꼴이 날 수 있다는 우려로 속으로만 멍들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이대로 계속되면 공멸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트럼프라는 고양이의 목에 아무도 방울을 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보다 기업 사정에 귀를 기울여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온건파 인사들과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관세를 깎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한 미 주요 기업 이사는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 (총대를 메고) 짖는 개가 되려는 이가 없다”면서 “나섰다가 총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기업 간부는 최선의 방안은 트럼프와 측근들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런 고강도 관세 정책이 미국 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촉발하고, 일자리도 사라지게 만들어 트럼프 핵심 지지층들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도 3일 ABC뉴스 편집회의에 참석해 트럼프 정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아이거 회장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가 말하는 것과 달리 미 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을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나라별로 특화된 노동력과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의 중국 폭스콘 설비를 예로 들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했던 석유 업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 셰일석유 업체 컨티넨털 리소시스 회장이자 미 국내 석유 업체들의 모임인 국내에너지생산자동맹(DEPA) 회장이기도 한 해럴드 햄은 FT에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면서도 지금처럼 낮은 유가에서는 증산을 통한 미 석유 패권 회복은 어렵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4일 6.5% 폭락해 배럴당 65.58달러로, 미국 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4% 폭락한 배럴당 61.99달러로 추락했다.

많은 기업들이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일인 ‘해방의 날’ 2일을 대비해 비상 계획을 세워뒀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미 최대 사모펀드 간부는 이들 기업이 관세율을 산정해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트럼프가 발표한 상호관세율이 이런 예상과 크게 달랐던 터라 이 계획들은 휴지 조각이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정한 4월 2일 마감시한을 맞추기 위해 미 행정부의 상호관세 책정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 교역 상대국들의 관세는 물론이고, 부가가치세 같은 비관세 장벽들도 모두 감안하겠다고 밝힌 것이 무색하게 대충, 급하게 관세율을 책정했다는 비판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국가에 대한 미 상품무역 적자액을 미 상품 수입액으로 나눈 비율을 대미 관세로 규정했다. 그 비율의 절반을 상호관세율로 책정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이는 마치 점성술로 천문학을, 창조론으로 생물학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JP모건이 이번 상호관세로 세계 경제 침체 확률을 40%에서 60%로 끌어올린 가운데 관세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경제를 압박할 것이란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세계 빅4 회계·컨설팅 업체 가운데 한 곳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US의 관세 전문가 크리스틴 볼은 “(불확실성의) 끝은 아직 시작조차 안됐다”면서 “기업들이 주요 공급망 이동은 생작조차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볼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생산을 A 국가에서 B 국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기에는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높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 관세 정책은 소로스펀드에서 잔뼈가 굵은 온건파 베선트 재무장관이 배제된 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선임고문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락가락 관세 정책과 정책 불확실성 속에 뉴욕 증시 시가총액은 지난 3~4일 이틀 동안 6조6000억달러, 트럼프가 미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월 20일 이후로는 11조달러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