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예약 사기'로 1350만원 피해 발생
피해자들 구제 요청에도… 시간만 미뤄
전문가 "법적 책임 떠나 소비자 생각해야"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로 유명세를 탄 안성재 셰프의 '모수 서울'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가 수 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의 식사비용을 날리는 사기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모수 서울이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수 서울은 지난달 23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긴급공지'라는 제목으로 "모수의 전화번호로 착신전환을 한 후 식사비용을 요구하는 범죄행위가 발생한 걸 확인했다"는 글만 올린 채 경찰 조사에 응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수 서울의 입장을 기다려 온 피해자는 지난 8일 변호인을 통해 서울 모수 측에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동시에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피해자 측 "큰 거 바라지 않는데..."
피해자 변호인 측이 모수 서울 운영업체인 무미와 그 대표인 안성재 셰프에게 보낸 내용증명은 피해자 네 명의 의뢰로 작성했다. 모수 서울이 파악한 피해자는 6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인 안모씨는 9일 "(모수 서울이) 처음엔 일주일을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다시 3주 기다려 달라고 한다"면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충분히 전달했는데 연락은 없고 피해자만 애가 타는 듯 하다. 결국 법적 검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명 ‘예약금 보이스피싱 사기’로 피해를 입은 4명은 지난 달 자신의 지역 경찰에 사기범을 고소하며 민법 760조의 공동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용증명을 보면 피해자들의 총 피해금액은 1350여만원에 달한다.
사기범인 A씨는 모수 서울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KT통신사 직원"이라 소개한 뒤 "인근에서 화재가 일어나 통신망이 끊어질 예정"이라며 임시 번호를 제시하고 착신 전환을 유도했다. 해당 번호는 A씨 번호였다.
이후 예약을 위해 모수 서울로 전화한 사람들은 모두 사기범의 전화로 연결됐고 선결제 요구에 따라 계좌로 식사비를 입금했다.
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걸 확인한 피해자들은 경찰 고소와 함께 모수 서울에 피해 구제를 요청해 왔다.
하지만 모수 서울 측은 시간만 미룬 채 피해자와의 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증명에도 "의뢰인들은 모수 서울에 피해 배상 등 대책을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받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간단하다. 모수 서울로 속아 입금한 예약금 전액을 돌려 받거나 6월까지 예약이 마감된 점을 감안해 7월 이후 원래 예약하려던 인원에 대해 ‘모수 서울’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사기범으로부터 피해 금액을 환수할 경우 모수 서울 측엔 식사비를 전액 결제할 예정이라는 전제도 붙였다.
변호인은 모수 서울 측이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에 불응할 경우 법적 절차에 나서겠다는 점도 예고했다.
앞서 모수 서울 관계자는 "아직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행동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며 "언제까지 답을 드린다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고 경찰 수사과정을 지켜보면서 저희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모수 서울, "우리도 피해자"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 서울은 2023년 미쉐린가이드 3스타를 받았다. 지난해 초 재정비를 위해 영업을 중단하고 지난 22일 재개장했다. 점심 영업 없이 저녁 코스 오마카세만 판매한다. 1인당 42만원이다.
이미 유명 식당이었지만, 안성재 셰프가 흑백요리사 출연한 뒤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모수 서울은 지난달 8일 예약 창을 열자마자 하루 만에 오는 6월까지 예약이 마감됐다. 중고장터에는 웃돈을 주고 예약권을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번 사기 사건은 안성재라는 스타셰프와 미쉐린3스타 식당이라는 유명세를 악용해 발생한 만큼 모수 서울도 피해 당사자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박지훈 변호사도 "모수 서울도 이런 일을 어떻게 예견할 수 있었겠냐. 예약금 피싱을 인지한 뒤에도 반복되도록 뒀다면 고의에 해당할 수 있지만, 오히려 식당도 피해자일 수 있어 책임 묻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전했다.
다만 모수 서울 측 직원이 사기범의 말만 듣고 전화 번호를 임시번호로 착신전환한 점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법적 책임보다 중요한 건 도의적 책임
마케팅 전문가들은 모수 서울이 법적 책임을 떠나 '내 고객'을 위한 자세로 피해자 구제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이건 식당이건 브랜드 이미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면서 "자신들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을 생각해서 위로의 방식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제 피해자 중 한 명인 이모씨는 생활비까지 모아 식당을 예약했다가 사기 피해자가 됐다. 이씨의 피해 금액은 2인 식사비용인 84만원이다.
20대 후반의 이씨는 "최근 취업에 성공하면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모수 서울 예약을 결심했다"면서 "사기범은 철저히 시나리오를 짠 듯 하다. 2인 예약금을 입금하면 당일 현장에서 1인 식사 비용은 되돌려 준다며 입금을 유도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씨는 "부푼 기대로 모수 서울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피해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모수 서울에 전화해 피해 사실을 말했더니 '괜찮냐'고 묻기는커녕 '우리 생각이 무엇인지'도 듣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인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서비스 신화를 제시하며 모수 서울의 대처를 짚었다.
김 교수는 "자기 매장에서 팔지도 않은 물건을 가져와 환불해 달라는 고객이 있다면 노드스트롬은 환불해 준다"면서 "코스트코도 소고기 1㎏ 사서 90% 먹은 뒤 10% 가지고 와서 문제 있다고 주장해도 환불해 준다.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식도 서비스업이다.
모수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식당을 찾으려다 피해를 입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며 "'누구의 잘못'을 판단하는 데서 나아가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게 필요하다. 이건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이미지 제고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도 "식당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인데 모수 서울의 대처가 아쉽다"고 전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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