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문제로 끝내 합의 실패
허송세월에 반도체 경쟁력 뒤처져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 등을 심의하는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강국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며 여야가 앞다퉈 발의한 반도체산업특별법이 1년째 표류하고 있다. '주 52시간 예외' 여부를 놓고 여야가 고집을 꺾지 않고 있어서다. 한시가 급하다더니, 대선 정국에 휘말려 법안 처리는 하염없이 미뤄질 판이다. 협치는커녕 남 탓만 하며 시간만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는 지난 8일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종결했다. 국민의힘은 주 52시간 예외조항 없이는 절대 처리 못한다고, 민주당은 이것 빼고 우선 처리하자며 맞섰다. 정부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에는 여야가 합의했지만 주 52시간제에서 막혔다. 결국 법안은 보류됐고, 두달간 선거 국면에서의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민주당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처리방안까지 꺼냈지만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가는 데 길게는 1년가량 걸려 무의미하다. 당리당략에 빠져 꼭 처리해야 할 경제법안을 결국 무산시킨 여야의 행태는 두고두고 비판받을 것이다.
일본, 미국, 유럽 등이 반도체산업에 수십조, 수백조원의 보조금을 쏟아붓겠다고 하고 중국은 반도체 기술력과 생산성에서 한국을 따라잡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반도체특별법을 만들어 보조금을 주고 세금 혜택을 늘리자는 법안인데 정치가 가로막았다.
이렇게 지난해부터 발의된 반도체산업 관련 법안이 9개에 이른다. 그러나 고소득 연구직의 주 52시간제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추가한 법안을 국민의힘이 발의한 지난해 11월 이후 여야는 완전히 틀어졌다. '주 52시간제 예외'가 특별법 몸통을 흔드는 양상이 돼버렸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수용할 입장을 내비쳐 진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와 노동계 반대가 거세지자 수용 불가로 돌아섰다. 정부는 하는 수 없이 근로기준법에 준해 연구개발(R&D) 분야의 연장 근로기간 규정을 보완, 수월하게 바꿨는데 임시방편일 뿐이다.
경직된 주 52시간제 규정을 유연하게 바꿀 필요는 있다. 방향은 맞다. 반도체는 시간싸움이다. 우리만 근로시간 규제에 묶여 경쟁국 추격을 눈뜨고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특별법에는 주 52시간 말고도 보조금 지원과 반도체산업본부 가동, 특별회계 수립 등의 중요한 내용이 많다.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한 근로시간 문제가 반도체산업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우리만 손해다.
일본은 TSMC 합작 반도체공장을 허가에서 가동까지 3년 안에 끝내고 제2공장까지 착공했다. 이보다 먼저 시작하고도 첫 착공까지 6년을 흘려보낸 경기 용인 반도체산단의 실패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여야가 협치해 '선 모수조정, 후 구조조정'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처리하지 않았나. 반도체산업과 첨단산업 연구직의 주 52시간제 규제 완화는 계속 논의한다는 전제로 반도체산업특별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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