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체 피해액 30% 몰려 있어
"돈 가진 노인 많아 주요 타깃" 분석
구청·은행, 경로당 돌며 예방 교육
"의심하GO·전화끊GO·확인하GO"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식들이 돈을 많이 주니까 수중에 재산이 좀 있어요. 그걸 알고 젊은 사기꾼들이 많이 몰려오지. 난데없이 구청 노인복지과를 사칭하거나 자식인 척 결혼식이라고 문자도 보내요. 이런 일이 하도 많으니까 의심부터 하게 되죠."
지난 11일 오전 찾은 서울 강남구 소재 대치경로당 담벼락에는 '보이스피싱 3GO! 의심하고(GO)! 전화끊GO! 확인하GO!'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었다. '무더위·한파 쉼터'라는 글씨를 보고 안에 들어갔지만 기자를 처음 본 어르신들의 눈에는 경계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피해 사례를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경로당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모씨(86)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노인들한테 (젊은 사람들이) 조금만 살갑게 해주면 다 넘어가서 사고가 많이 터졌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누룽지를 한 움큼 쥐어줬다.
이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13일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보이스피싱 올해 통계를 살펴보면, 피해액은 지난해 9월 249억원에서 같은 해 12월 610억원으로 3개월 간 2.5배 증가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서울 전체의 약 30%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금감원이나 검찰청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60대 여성은 648명으로, 전년 동기(221명) 대비 3배가량 늘었다는 경찰청 통계도 있다.
최근 강남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모님이 가까운 곳에 거주하시면 보이스피싱을 주의하시라고 신신당부하라"는 취지의 글이 게재되는 등 보이스피싱 경계 기류도 여럿 포착된다.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정모씨(83)는 "노인네들이 연금 모아둔 걸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돈 더 늘려준다고 해서 사기 친다고 하더라"며 "우리 아들도 모르는 전화는 절대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강남 노인들이 쉽게 보이스피싱 타깃이 되는 이유는 '현금 동원력'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금 동원 능력이 몇백만원에 그치는 서민층의 경우 보이스피싱에 성공하더라도 큰 수익을 거두기 쉽지 않다"며 "사기범들은 생활 형편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자금을 본인이 충당하거나 주변인 또는 대출 기관에 빌려 다량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관건은 '예방 교육'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곽 교수는 "보이스피싱은 계절적 요인 또는 조의금과 부의금이 많이 나가는 시기,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범행 시나리오가 바뀌는 특성이 있다"며 "다양한 범행 수법에 대한 사전 교육과 홍보를 통해 피해 우려가 있는 계층으로 하여금 대응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노인 대상 보이스피싱 우려가 증폭되면서 강남구는 이달 들어 신한은행 강남구청지점과 협약을 맺고, 관내 경로당을 순회하며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등 범죄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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