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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비판받을 용기

[강남시선] 비판받을 용기
안승현 전국부장
거짓말은 들통나고, 약속은 깨지고, 실정은 드러난다. 세상에 완벽한 정치인은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의 사과는 항상 모호하다.

권력이라는 갑옷은 견고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약은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사과'라는 말은 목에 걸린 가시다. 사과는 그들에게 패배의 다른 이름이고,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가장 강한 리더십은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1년 피그만 침공 실패 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작전이 실패로 끝났음을 자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후 그의 국정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스캔들 당시 자신의 실수가 있었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이런 솔직함이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표상으로 그를 남게 했다.

한국 정치는 사과에 늘 인색하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입에서도 국민에 대한 사과는 없다. 정치인들은 대개 '유감이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 '국민께 걱정을 드려 죄송하다' 같은 표현을 술술 쏟아내지만, 뒤에서 실제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인의 사과는 국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사과를 두려워하는 정치문화는 책임을 회피하고,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다.

흔히 '직을 건다'는 표현이 정치판에서 많이 쓰인다. 쉽게 말해 지면 내 자리를 내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진짜 실천에 옮긴 경우는 한 명을 빼면 언뜻 떠올리기 어렵다. 과거 무상급식 투표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내놨던 오세훈 현 서울시장 얘기다.

얼마 전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에 대한 이슈도 비슷한 맥락이다. 토허제 지정을 수개월 만에 번복하면서 오 시장은 당위나 역설을 젖혀 두고 그냥 사과로 갈음했다. "토허제가 생각보다 시장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 같다"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구차한 변명 대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맺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치권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다.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반성이 없는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전략과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다. 그런 용기는 오히려 지도자의 신뢰도를 높인다. 인간적인 실수도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거대한 국가적 위기에 솔직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라는 몇 글자가 그렇게 어려운가.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한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 브렉시트 혼란에 대해 사과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 외국 정치인들의 사례를 보자. 실수하고 오판했지만 변명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인정했다. 적어도 그들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얻었다.

'대통령의 성격'이라는 저서를 남긴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데이비드 바버는 권력이 행사되는 방향은 결국 대통령이 가진 본질적인 '성격'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권력은 사람의 본성을 바꾸지 않고 강화할 뿐이다. 사과를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을 얻기 전에도 사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문화의 변화는 개인적 도덕성과 밀접하고 제도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문제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실수를 바로잡을 용기이다. 비판과 마주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다. 오 시장은 과거 무상급식에 시장직을 걸었고, '토허제'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실수를 인정했으며, 이번에는 정치인생을 걸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최소한 '비판받을 용기'를 가졌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사과할 줄 아는 정치문화는 책임지는 정치, 실수로부터 배우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의 출발점이다. 조기대선이 시작됐다. 비판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과연 미래 권력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화려한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그 뒤에 드러나지 않은 리더의 진짜 자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ahnm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