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fn이사람] "정치 실종의 시대, 도자기 구우려면 손에 흙 묻혀야"

최연소 국회입법조사처장, 정치학자 이관후 인터뷰
취임 보름 만에 비상계엄...'헌정 사상 처음'의 연속
"정치·사회 갈등의 해법, 모두가 알지만 하지 않아"
이관후가 생각하는 차기 대통령의 덕목은?

[fn이사람] "정치 실종의 시대, 도자기 구우려면 손에 흙 묻혀야"
파이낸셜뉴스는 16일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20년 전 한 정치인한테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박혀 있어요. '손에 흙 안 묻히고 도자기를 구울 순 없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의 정치가 그런 것 같아요."
17일 만난 정치학자인 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은 최근 극단 대립의 해결 방안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6·3 조기 대선은 기존의 정쟁을 털어내고, 정치 회복과 갈등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분기점으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 처장은 지난해 11월 취임한 직후 이어진 계엄·탄핵 정국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계엄군의 본청 침입부터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헌법재판관 미임명 등 이어진 계엄·탄핵 정국은 모조리 '헌정 사상 처음'의 연속이었다. 탄핵 정국에서 양당의 정쟁은 더욱 극심해져 입법부는 전쟁터로 전락했다. 서로를 약점을 공격하는 정쟁 입법이 잇따랐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채용 비리·부정선거 이슈를 띄우기 위한 선관위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내놨고 민주당은 내란 책임이 있는 정당은 해산토록 하는 정당법 개정안 등을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처장은 법안 처리라는 결과보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조정·타협하는 과정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서로를 비난하는 '꼬투리 입법'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특히 국회의원을 폭행하면 가중처벌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 폭행을 당할 정도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돼 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며 "처벌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같은 극단적 대립의 해답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고 정치는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다수의 이익만 좇으면서 오염돼 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처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만 공짜이길 바란다"며 "(설득이) '안 된다, 어렵다'하면 정치가 왜 필요하겠나. 그러니 사람들이 정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처장이 강조하는 정치 복원의 핵심은 '갈등 조정'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손에 흙을 묻혀야'하는 것이다. 이 처장은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게 정치인데 자기 지지층을 동원·결집하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이 났으면 얼른 꺼야 되는데 유불리만 따지니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그 결과는 공멸"이라고 강조했다.

이 처장은 계엄·탄핵이라는 정치적 혼란과 관세 전쟁의 파고 등 경제적 혼란 등 복합 위기를 마주한 대한민국을 폭풍우에서 막 탈출한 배에 비유했다. 방향타도, 돛대도 모조리 망가져 있는 배다. 조기 대선은 '선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배를 어떻게 수리할 것인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논의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새로운 선장이 갖춰야 할 덕목과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이 처장은 차기 대통령이 현 위기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위기'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처장은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면서 해결 방식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이상하지 않나"며 "여러 문제를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안목,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비전,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haeram@fnnews.com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