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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이패스' ETC 둘러싼 이해관계.. 민간 이권 챙기기에 통행료 인하는 뒷짐 [글로벌 리포트]

점점 멀어지는 '요금소 없는 미래'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 고속도로에 우리나라의 하이패스와 같은 전자요금수납시스템(ETC)이 도입됐을 때 정부는 '요금소 없는 미래'를 약속했다. 정차 없이 통과하는 시스템, 인건비 절감, 통행료 인하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2024년 현재 ETC 보급률은 93%를 넘었지만 요금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통행료 인하도 현실이 되지 않았다. ETC는 분명 이용자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주행 속도를 줄이지 않고 결제할 수 있는 무정차 시스템은 도심 정체 해소에 일정한 효과를 냈고, 인건비 절감 등 비용 효율도 높였다.

하지만 ETC 시스템의 운영은 민간 기업이 담당한다. 단말기 제작·설치·운영사 시스템 유지에는 막대한 비용이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에게 돌아가야 할 요금 인하 효과는 대부분 민간의 운영 수수료로 전환됐다.

실제 일본 도로공단(NEXCO) 산하 고속도로의 경우 ETC 운영 관련 외주 계약에 따라 총 통행료 수입의 5~7%가 민간 정보기술(IT) 기업에 지급된다. 단말기 보급 확대 이후에도 통행료 인하가 이뤄지지 않는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국회 내 야당 의원들은 "ETC는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화라는 명분 뒤에 민간 이익 구조를 구축한 것"이라며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또 통행료 자동화로 기대됐던 요금소 폐지는 물리적·행정적 장벽에 부딪혔다. 일부 지역은 무정차 요금 인식률이 낮아 이중 청구 문제가 발생했고, 고령 운전자나 방문객을 위한 수기 결제 인프라도 유지해야 하는 현실이다. 2023년 기준 전국 ETC 미설치 차량 비율은 약 6%로, 절대 다수는 ETC를 쓰고 있지만 100% 자동화에는 제약이 남아 있다.

시민단체는 요금소 폐지와 통행료 인하를 연계한 시민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람은 줄었고 기계는 늘었는데, 요금은 왜 그대로냐"는 것이다.

실제로 요금소 정산 인력은 2010년 대비 70% 이상 줄었지만, 통행료는 오히려 오르는 구간이 생기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운영 비용 절감은 사실이지만 그 재원은 도로 유지·보수에도 사용된다"는 입장이나 설득력은 떨어진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기술, 정책, 이해관계가 얽힌 복합 구조물이다. 요금소가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기계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 자체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TC 시스템은 처음엔 공공재의 디지털화로 도입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민간 이권이 고착화됐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