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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긴 시설이 하필… 그래도 만날 거라는 희망을"[잃어버린 가족찾기]

복지시설에 3세 때 맡겨진 강미정씨
1년도 안된 사이 아이 없어졌다 전해
시설은 학대·사망 사건 뒤늦게 터져
입양됐거나 퇴소했을 가능성에 희망

"맡긴 시설이 하필… 그래도 만날 거라는 희망을"[잃어버린 가족찾기]
"좋은 곳인 줄 알고 잠깐 맡긴 건데, 엄마가 얼마나 후회하셨을까요."

강미정씨(현재 나이 51세·사진)와 4살 터울의 여동생 박해란씨는 48년 전 강씨를 시설에 보내고 애를 태웠던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을 낳은 뒤에야 알게 됐다. 박씨는 10여년 전 발급받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복언니 강씨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박씨는 그때부터 첫째 딸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열을 올렸다.

어머니 황의숙씨는 1977년 12월 7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만 3세였던 강씨를 맡겼다. 박씨를 임신한 채였다. 황씨는 가정을 소홀히 하던 남편과 헤어진 뒤 홀로 지내다 박씨의 아버지를 만났다. 지금의 세종시에서 상경 후 봉제공장 일과 동시에 두 아이를 돌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씨를 시설에 잠시 보냈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데려오려고 했다. 잠깐이라도 홀로 두는 것이 미안해 예쁜 옷을 입힌 뒤 사진관에 가서 아이와 단둘이 사진도 남겼다. 장애인 시설이지만 원생들을 잘 돌보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사정을 말하고 강씨를 맡길 수 있었다. 이후 황씨는 첫째 딸이 눈에 밟힐 때마다 시설을 찾았다. 갈 때마다 작은 성의로 돈을 준비해 갔다. 하지만 세번째 방문부터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다섯번째 방문 때는 아이를 데려오려 했지만 시설에서는 아이가 없어졌다고 했다. 강씨를 맡긴 지 1년이 안돼 벌어진 일이었다.

박씨는 어머니가 당시 언니를 찾을 힘이 없었을 거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박씨의 아버지 모두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남편은 병세가 악화돼 결국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자신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황씨가 언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다녔다고 기억했다. 방송에 출연하고 제보를 받으면 전국을 돌았다. 신고조차 하지 못하다가 15년전쯤에서야 경찰서에 가서 유전자를 등록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강씨를 맡긴 시설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시설을 운영하던 목사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뒤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는 의혹이었다. 황씨는 뒤늦게 방송 내용을 접한 뒤 충격을 받고 뇌졸중으로 세 차례 쓰러졌다.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박씨가 어머니 대신 언니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 건 이때부터다. 방송국 PD와 연락이 닿아 탈출한 사람의 증언과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씨는 시설에서 '장성미'라고 불렸고, 장애인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박씨도 방송 등에 출연하며 또 다른 제보 등을 기다렸지만 언니가 언제까지 시설에 있었는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문제가 된 시설을 운영한 목사는 징역을 살고 나온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이들이 보고싶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박씨는 "엄마는 결과적으로 안좋은 곳에 아이를 맡겼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이 후회된다"며 "목사가 난폭해지기 전 언니가 입양됐다면 시설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으니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