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캠프 등 비전보다 비방
"마이크 꺼 발언 기회 빼앗아 갔다"
"표현 부적절" "명예훼손" 등 사유
'고소' 그 자체가 주목적인 경우도
수사처, 정치개입 논란 휘말리고
유권자, 피로감 느껴 투표율 저하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선거(대선)가 고소·고발전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 전부터 얼룩지고 있다. 후보자 개인을 겨냥한 사안부터 이른바 '말꼬리 잡기'식까지 내용은 다양하다. 그러나 법적 분쟁이 지나치게 되면 정책·비전 경쟁이 아니라 흠집내기 대결이나 여론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는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릴 수 있고, 사정·사법기관의 정치 개입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선 과정부터 고발장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이날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이지만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은 이미 여러 건의 고소·고발 사건을 배당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공수처의 경우 지난 9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 사건들을 수사4부(차정현 부장검사)에 맡겼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3일 민생경제연구소 등 복수의 시민단체로부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전원합의체 회부해 9일 만에 2심 무죄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는 게 이유다.
대선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고소·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당시 한덕수 무소속 대선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와 형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앞서 한 전 후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표현해 논란이 일자 "이재명 후보도 과거 광주사태 표현을 썼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 발언을 왜곡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수신자의 동의 없이 캠프 특보 위촉장을 일방적으로 발송했다며 개인정보보호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장을 냈다. 또 '명태균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을 제기하며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국민의힘 경선 때 수뢰후부정처사 등 혐의로 고발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이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성장과 통합' 관계자들을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성장과 통합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조직임에도 위원들에게 직위별로 일정 금액의 회비를 부과해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하려 했다는 게 국민의힘 측 논리다.
또 지난달 23일에는 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직권남용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상임위에서 이 후보를 비판하자 최 위원장이 마이크를 꺼 발언 기회를 일방적으로 박탈했다는 것이 고발 사유로 적시됐다. 해당 사건은 서울경찰청에서 영등포경찰서로 이첩된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도 '너도나도' 고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도 가세하고 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초선 모임 '더민초' 소속 의원 등 75명을 내란선동과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서민위는 고발장에서 "이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대해 박 원내대표 등이 '사법 쿠데타' 등 부적절한 표현을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고발장 검토에 이어 고발인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벌어지는 고소·고발전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서 정치적 신뢰성과 민주주의 절차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고소·고발의 내용보다 '고소했다'는 사실에 집중될 경우 정책이나 공약 대신 상대 비방에 주력하게 되고, 이는 비방전, 이미지전 등 선거를 혼탁하게 변질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정상적 절차에 의거해 수사한 검찰·경찰·공수처가 정치 개입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으며,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면 투표율 저하의 결과가 나타할 수도 있다고 법조계는 분석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에서 대화가 실종되면서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게 됐다"며 "지금은 협치를 기대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정치력이 바닥이 난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소·고발을 남발할 게 아니라 정치권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현재까지 대선과 관련해 129명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위사실 유포 104명 △공무원 선거 관여 15명 △선거폭력 7명 △금품수수 3명 등이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장유하 서지윤 기자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