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현 과도기 국제질서, 지정학적 공간·경계 넘어 연결·융합되는 특징 보여
-유럽-인태 공조 강화, 융합 가동은 과도기 안보질서의 파생적 나비효과
-패권국 안보 공공재·국제규칙 의지 어려워 지정학 넘은 공조 수요 부상
-트럼프 대통령 최근 미-사우디 포럼서 대시리아 외교정책 대개조 선언
-美 10년 만에 제재 해제로 중동-한반도 지정학적 연결 동기 여지 부상
-스몰딜로 핵동결 해제, 핵보유국 노리는 북에 현실화 기대 높이는 사례
-美 시리아 제재 해제가 北에 새시대 도달했다는 판단 단초 제공 가능성
-북한, 시리아보다 제재 해제 요구 용이할 수 있다는 셈법 가동될 수 있어
-韓 비핵국으로 패싱, 미북 직거래 나서면 핵안보 차원서 심대한 도전 직면
-한반도, 중동의 나비효과에 잠식되지 않도록 한미동맹 관리가 더욱 중요
-北제재 해제, 시리아 상황과 원천적으로 다른 점 외교 공조 강화 나서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현 과도기 질서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지정학적 공간이 각각의 경계벽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고 융합된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과 인도-태평양이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에서도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지정학적 융합이 가동되는 이유는 일종의 과도기 안보질서의 파생적 나비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기존의 패권안정 기제나 규칙기반질서 역학이 흔들리면서 안보의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은 현상변경국가의 전략적 기회로 작용하여 과거에는 무관했던 지역까지 관여에 나서는 동기가 부상하게 된다. 북한군의 유라시아 파병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또 다른 이유는 패권국의 안보 공공재 제공도 기대하기 어렵고, 국제규칙에 의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국의 안보를 위해 지정학적 공간을 뛰어넘는 광폭의 연대와 공조가 절실하다는 전략적 수요가 부상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중동과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동기가 부상할 여지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2024년 12월 8일 시리아 반군이 다마스쿠스 점령에 성공하며 50년에 걸쳐 잔혹한 통치를 이어온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시리아의 변화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2025년 1월 6일 바이든 행정부가 한시적으로 시리아 제재 완화에 나선 것이다. 한편 1월 20일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아메드 알샤라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에 대한 입장을 유보해왔다. 그런데 중동순방 일정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3일 미-사우디 투자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시리아에 대한 모든 제재를 중단하라고 명령하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빈살만 등 중동 지도자의 요청에 응하는 방식이었지만, 미국의 대시리아 외교정책의 대개조를 선언한 것이라는 점에서 파격에 가까운 조치였다.
10년 만에 미국이 대시리아 제재 전면 해제에 나서면서 가장 기뻐할 대상은 시리아 과도정부와 시리아 국민일 것임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리아 다음으로 이 상황을 전략적 호기로 판단하여 주목하는 국가가 있지는 않을까? 이런 인식의 중심에 북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소위 스몰딜을 통해서 핵동결로 제재를 완전히 해제 받은 후 공식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핵 프로그램 완성을 위한 최종단계 목표라고 상정해 놓은 상태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수시로 미국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핵협상 상대국이 미국이라는 점을 각인시켜며 대외확장적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이다. 러시아 지원을 위한 북한군의 파병도 이러한 목표 달성과도 전략거래 차원에서 연계되어있다.
시리아 제재 전면 해제라는 중동의 상황은 북한이 이러한 목표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이는 공식의 작동을 예고한다. 즉 북한은 과거에는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웠던 미국의 시리아 제재 해제도 가능한 새로운 시대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핵무기도 없고 기껏해야 과도정부를 힘들게 이끌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서도 미국이 변혁적 수준의 외교정책을 구사하는데, 핵무장을 완료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든든하게 지원해주고 있는 북한 자신에 대한 제재 해제 요구는 보다 용이할 수 있다는 셈법이 가동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셈법이 기대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화된다면 한국의 안보이익에 심대한 해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이 비핵국가라는 것을 전략적으로 역이용하여 북한은 한국을 패싱하고, 더불어 미국은 외교 대개조 차원에서 북한과 직거래에 나선다면 한국은 한반도 주도권을 잃을 뿐 아니라 핵안보 차원에서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한반도가 중동의 나비효과에 잠식되지 않도록 한미동맹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을 주지하고 나아가 북한 제재 해제는 시리아 상황과는 원천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공유하기 위해 유사입장국과의 외교적 공조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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