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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의 컨틴전시 플랜] 굴절된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논쟁

내년 1월 식당 등 설치 의무화
자영업자 부담 가중 반발 불러
갈등 조장 아닌 절충안 도출을

[조창원의 컨틴전시 플랜] 굴절된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논쟁
조창원 논설위원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개선하려는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큰 글씨에 음성 기능까지 갖춘 배리어 프리(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키오스크를 내년 1월 말까지 설치해야 한다. 교체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팩트만 놓고 보면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의무화는 나쁜 정책이다. 실제로 장애인 편의를 위해 자영업자를 죽이려는 졸속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쇄도한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여론몰이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논쟁을 바로잡기 위해 짚어볼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정부의 탁상행정이란 비난에 담당 부처 공무원은 억울할 것이다. 설치 대상을 단계적으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법 시행 유예기간까지 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탁상행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원래 진흥책은 정부의 인센티브가 걸려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세부 시행들을 꼼꼼히 챙긴다. 반면 규제정책에 대해선 저항이 심하거나 둔감한 편이다. 이게 시장의 속성이다. 더구나 자영업 위기가 심각한 시점에 추가 비용부담이 거론되니 저항이 더 거셀 수밖에 없다. 규제정책일수록 정부가 더욱 세심하게 홍보와 계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유관 부처들 간 칸막이 행정도 이번 사달을 낳았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설치정책을 주도하는 건 복지부인데 기술검증은 과기부, 보조금 지급은 중기부 소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영업 현실을 도외시한 채 장애인정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과 검증된 키오스크 물량을 확보했느냐는 지적은 각각 복지부와 과기부를 겨냥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난은 중기부를 향한다. 물론 비상계엄 사태로 국정이 마비된 게 이번 논란을 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합 의사결정기구가 없다는 지적이 이미 있었기에 국정공백이 변명이 될 순 없다.

지금이라도 정책 매뉴얼을 만들어 계도를 강화해도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만큼 보조금을 듬뿍 주거나 시행을 또 연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래저래 반전의 묘수가 안 보인다. 실타래처럼 꼬인 키오스크 문제를 풀어내려면 편향된 인식의 기준을 바로잡는 게 지름길이다.

우선 보조금을 늘릴 경우 적정선을 따져봐야 한다. 원래 키오스크는 서비스 업계가 인건비를 줄이려고 자발적으로 도입하던 기기였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투입되는 키오스크 비용 부담은 업자의 몫이란 얘기다. 다만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설치는 새 기기 교체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공간 확보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바닥재 설치가 수반된다. 보조금을 늘린다면 이런 점을 두루 따져 적정 비용을 산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행 시기를 또 연기하는 방법도 있다. 해당 정부 부처나 자영업자 모두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소비자도 자영업자도 득이 될 수 없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정책은 장애인을 위한 시혜가 아니다. 마치 장애인들을 식당에서 우대받는 무임승차자로 오인케 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장애인과 자영업자 간 갈라치기로 비화되는 현실에 유감이다. 오히려 장애인들이 정당하게 비용을 지급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접근성을 넓히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다. 장애인은 정당한 소비자 권리를 행사하고 사업자는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는데 이 정책을 더 미룰 이유가 없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정책을 미룰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다. 내년 1월 디지털포용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 법은 디지털 기기가 특정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위한다는 협소한 관점을 깨고 모든 시민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고령층뿐만 아니라 신체가 불편한 일반인도 편리하게 사용 가능한 '유니버설 디자인' 도입이 세계적 추세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논쟁을 회피한다면 유사한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이번 논쟁을 정면승부로 풀어야 하는 이유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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